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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친호텔

호텔 214호, 남사친의 비밀

철컥, 214호 호텔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익숙한 미소가 사라졌다. 열다섯 해 넘게 남사친으로 지내온 민준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다.

"들어와." 그는 무겁게 말했다. 호텔 방 안으로 들어서니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에메랄드 빛 침대 커버 위에는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민준은 내게 그것을 건넸다. "열어봐, 서연아."

봉투를 열자 사진 한 장이 나왔다. 흑백 사진 속 웃고 있는 어린 소녀는 분명 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소년은... 민준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목소리가 떨렸다.

"그 사고 후에 네가 기억을 잃었을 때, 난 네 옆에 있던 다른 친구였어." 그의 목소리에서 오랜 비밀을 간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네가 깨어났을 때, 널 너무 좋아했던 진우는 네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어 떠났고... 난 그저 네 곁에 남았을 뿐이야."

호텔 방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이 마치 오랜 시간 속에 갇힌 눈물처럼 느껴졌다. 호텔 방 내부의 은은한 조명이 우리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15년 동안 언제든 진실을 말할 수 있었잖아."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노보다는 혼란이 컸다.

민준은 침대 끝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네가 기억을 되찾길 기다렸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 네 남사친이 되는 게 좋았어. 진우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죄책감도 있었지만, 그보다..." 그는 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호텔 메모지에 무언가 적혀 있었다. 진우의 연락처였다. "그는 여전히 너를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나도 여전히 네 곁에 있을게, 네가 원한다면."

호텔 방을 나서며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내 뺨을 스쳤다. 15년간 남사친으로만 알았던 사람의 진심, 그리고 내가 잊었던 또 다른 사람의 존재. 214호 호텔 방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한 챕터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