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남사친화장품

남사친의 화장품 비밀

화장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정수는 떨어진 파운데이션을 주우려다 멈칫했다. 그것은 분명 어제까지 자신의 화장대에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10년 지기 남사친 민준의 욕실 선반 위에서 발견된 것이다.

"야, 민준아! 이거 설명 좀 해줄래?" 정수는 흔들리는 손으로 화장품을 들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던 민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민준의 얼굴에 드리우며 그의 당혹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거... 내가 설명할 수 있어." 민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았다. 열 살 때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며 형제처럼 지내온 그들이었지만, 정수는 민준의 표정에서 처음 보는 취약함을 발견했다.

"내일이... 첫 면접이야. 네가 항상 그러잖아.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민준은 말을 이어갔다.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있어서... 네 화장품으로 가려보려고 했어. 그냥 빌려달라고 할까 했는데, 네가 놀릴까봐..."

정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던 민준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팔짱을 끼고 소파 옆에 서있던 정수는 천천히 민준 옆에 앉았다.

"바보야, 그냥 말하지. 내가 언제 그런 거로 널 놀렸어?" 정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근데 너 그거 써봤어? 내 피부톤이랑 너랑 완전 달라서 더 이상해 보일 텐데."

민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유튜브에서 메이크업 튜토리얼 보면서 해봤는데... 망했어. 얼굴이 마치 할로윈 분장 같았어."

그 말에 정수는 폭소를 터뜨렸다. 처음에는 멋쩍게 웃던 민준도 이내 함께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잦아들자 정수는 결심한 듯 일어섰다.

"자, 앉아. 내가 해줄게." 정수는 화장품 파우치를 가져왔다. 민준의 얼굴에 가볍게 프라이머를 바르며, 그녀는 10년 동안 한 번도 이렇게 가까이서 민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색 눈동자, 긴 속눈썹, 그리고 그가 그토록 가리고 싶어했던 여드름 자국들.

"너 알아? 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정수는 컨실러로 반점을 가리며 말했다. "화장품이 필요한 게 아니야. 그냥 자신감이 필요한 거지."

민준은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었다. "알아. 근데 지금 네가 해주는 게 도움이 돼."

다음 날 아침, 정수는 출근 준비를 하던 중 현관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내부에는 새 화장품 세트와 쪽지가 있었다. '면접 붙었어. 네 덕분이야. 이제 내 것으로 할게. - 너의 남사친'

정수는 웃음을 지으며 쪽지를 다시 읽었다. 어쩌면 '남사친'이라는 레이블 뒤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모습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속에 살며시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