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MBTI 게임
그는 내 남사친이었고,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였다. "너 MBTI 뭐야?" 고등학교 3학년 여름,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첫 질문이었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교실에서 태호는 내 책상 위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INFJ."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태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고 나도 웃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너도 테스트해봐. 우리 궁합 좀 볼게." 내가 건넨 스마트폰을 받아들며 태호는 진지하게 질문들을 읽어나갔다. 그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질 때마다 교실 에어컨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갔다.
"ENTP래. 우린 황금 궁합이래." 태호의 목소리에는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한 톤이 섞여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MBTI 게임을 시작했다. 점심시간마다 서로의 성격 유형을 분석하고, 하교길에는 다른 친구들의 MBTI를 추측했다. 우정이라는 이름의 안전한 영역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INFJ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본대. 내 마음도 알아?" 어느 날 밤, 태호의 문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경계를 넘지 않으려 노력했다. "ENTP는 논쟁을 좋아한대. 지금 나랑 논쟁하고 싶은 거야?" 안전한 대답을 보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 깊어졌다. MBTI라는 가면 뒤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진짜 모습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었다. "INFJ는 완벽주의자래. 실망하면 그냥 사라진대. 너도 그래?" 태호가 물었을 때, 나는 "그럴지도"라고 대답했다.
졸업식 날, 태호는 내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안에는 두 개의 팔찌가 있었다. 하나는 'INFJ', 다른 하나는 'ENTP'라고 적혀있었다. "우리 항상 친구로 남자"라는 쪽지와 함께.
대학에 진학한 후, 태호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나는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우리는 종종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했지만, 그때의 MBTI 게임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어느 날 태호가 말했다. "사실 난 ENTP가 아니야. 테스트 결과는 ISFP였어. 근데 네가 말한 황금 궁합이 너무 듣고 싶어서..."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태호가 웃었다. "MBTI는 사람의 16분의 1일 뿐이야. 나머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거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INFJ의 문은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1년 후, 태호에게서 편지가 왔다. "MBTI는 게임이었지만, 너에 대한 내 마음은 진짜였어." 편지와 함께 동봉된 것은 새 팔찌였다. 두 개 모두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LOVE'. 가끔은 16개의 유형보다, 4글자의 진실이 더 복잡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