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의 병원: 우리가 아프지 않기로 한 날
병원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일 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뛰었다. 서른 번째 깜빡임에 민준이 걸어 나왔다. 웃고 있었다. 이상했다. 두 달 전 그가 '3기'라는 말을 듣고 무너졌던 병원과 같은 곳이었는데.
"괜찮아?" 내 목소리가 떨렸다.
"응, 의외로." 그의 손가락이 내 손을 찾아왔다. 차가웠다. 항상 따뜻했던 그의 손이 이젠 언제나 차가웠다. "오늘은 통증이 별로 없어. 기적이라고 할까?"
민준은 매일 아침 커피 대신 약을 삼켰다. 처음엔 약통을 보며 울었지만, 이젠 물 한 모금에 알약을 넘기는 솜씨가 놀라울 정도였다. 우리는 '항암치료'라는, 죽음에 대항하는 전쟁을 시작한 지 62일째였다.
병원 앞 벤치에 앉아, 그는 내게 말했다. "여기 오면서 생각했어. 내가 만약..." 나는 그의 입에 손가락을 올렸다. 우리는 그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예뻐?" 민준이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 항암제가 그의 웃음 주름까지 지울 순 없었다.
"매일 예쁜데?" 나도 웃었다. 쓰린 웃음이었지만, 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지. 내 여자니까." 그가 약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선물이 있어."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작은 USB였다. "뭐야, 이거?"
"내 목소리. 매일 하나씩 녹음했어. '오늘의 민준'이라고. 예전의 나... 그러니까, 더 건강했을 때의 나. 나중에 듣고 싶을 때 들어."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이해했다. 민준은 가장 중요한 소식을 듣고 왔다는 것을. 오늘 병원에서 그는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나 오늘... 완치 판정 받았어."
내 눈물이 멈췄다. 귀를 의심했다.
"무슨... 말이야?"
"의사도 믿을 수 없대. 암세포가 거의 사라졌대. 기적이래."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이걸 만든 거야. 내가 아팠던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우리가 이겨낸 시간을."
병원 앞 벤치에 앉아,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삶이 주는 놀라운 선물에 대한 경외로.
USB를 쥔 내 손이 따뜻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건너온 어둠의 강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었다.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사랑이 어떻게 죽음보다 강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