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울림, 그녀가 남긴 여친의 그림자
그녀의 노래가 멈추던 순간, 세상의 모든 색깔이 빠져나갔다. 오늘로 정확히 317일째, 내 휴대폰에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 파일 하나가 저장되어 있다. 삭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나는 매일 밤 같은 의식을 치른다.
"오빠, 이거 들어봐. 내가 만든 노래야."
휴대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약간 떨리는 음정, 긴장했을 때 특유의 코맹맹이 발음, 그리고 마지막 소절에서 살짝 웃음을 참지 못하는 숨소리까지. 3분 27초의 노래는 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유일한 다리다.
내 전 여친은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다. 대형 기획사 오디션을 다섯 번이나 떨어지고도 "다음엔 꼭 붙을 거야"라며 웃던 그녀. 우리가 헤어진 건 그녀가 마침내 기회를 잡았을 때였다. 지방 소도시의 무명 가수에서 서울의 연습생으로 거듭나는 순간, 그녀는 '현실적인 결정'이라는 이유로 3년 관계를 정리했다.
"우리 둘 다 각자의 꿈에 집중해야 할 때야."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아메리카노에서는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내 손끝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의 SNS를 언팔로우했고, 우리의 모든 사진을 삭제했다. 단 하나, 그녀가 보내준, 직접 작곡한 노래만 남겨두었다.
어제 지하철에서 우연히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무심코 듣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멜로디가 너무나 익숙했다. 가사는 완전히 달랐지만 곡조는 그대로였다. DJ가 "신인 작곡가의 데뷔곡"이라고 소개했을 때, 내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오늘 아침,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축하해. 네 노래 정말 좋더라."
답장은 저녁에야 왔다. "고마워. 사실 그 노래... 우리가 헤어진 후에 만든 거야."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한 무대 위 사진들로 가득했다. 댓글들은 모두 칭찬일색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댓글 하나. "당신의 노래가 내 인생을 바꿨어요."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그 노래 파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삭제 버튼이 아닌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우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누군가의 여친이기를 그만두어야만 자신의 노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그녀의 전 남자친구이기를 그만두고 내 자신의 노래를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