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노래, 첫 유튜버
마을의 마지막 노래가 멈추던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유튜버가 되었다. 알림음이 폭발하듯 연이어 울리는 동안, 창밖에서는 오랫동안 들려오던 할아버지의 트로트가 영원히 사라졌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옆집 할아버지의 마지막 노래를 공유합니다." 떨리는 손으로 올린 영상 속에는 평생을 노래방에서 살다시피 한 윤 할아버지의 마지막 무대가 담겨 있었다. 구석진 시골 마을, 낡은 앰프 하나로 매일 아침 온 마을에 노래를 들려주던 그분의 목소리는 이제 없었다. 대신 내 채널에서 그의 노래는 기하급수적으로 퍼져나갔다.
구독자 100만을 돌파하던 날, 뜻밖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영상 제작자님, 제가 윤 선생님 외동딸입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허락 없이 그의 노래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것도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화려한 조회수 뒤에 숨은 죄책감이 목을 조였다.
딸은 놀랍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아버지의 노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니, 그분이 얼마나 행복해하실까요." 그녀는 아버지의 오래된 노트를 보냈다. 거기엔 평생 작곡한 미발표 노래 수백 곡이 빼곡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두 줄의 메모가 있었다. "내 노래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유튜브라는 것에 도전해볼까?"
그날부터 나는 단순한 유튜버가 아닌, 할아버지의 유산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한 곡씩 녹음하고 이야기를 담아 올릴 때마다, 댓글창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넘쳐났다. "이 노래가 내 우울증을 치유했어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내 고향이 느껴져요", "더 이상 외롭지 않아요".
1년 후, 나는 시골 마을에 작은 공연장을 열었다. 매주 토요일, 주민들과 멀리서 찾아온 팬들이 모여 함께 노래한다. 공연장 한가운데는 윤 할아버지의 낡은 마이크가 전시되어 있다. 가끔은 그 마이크에서 바람 소리 같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아이들이 속삭인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켠다. "여러분, 오늘의 노래는..." 시작하기 전,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화면 너머로 할아버지가 미소 짓고 있을 것만 같아서.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유튜버란 단순히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사람임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이곳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