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로 포장된 이별
수민이 그녀의 방 구석에 던져진 청바지를 발견한 것은 비가 창문을 때리던 토요일 오후였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가 좋아하던 연청색 뉴진스. 그녀는 그것을 집어들었고,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이걸 찾았다는 건, 난 이미 떠났다는 뜻이야."
수민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종이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그녀는 한 달 전 태현이 남겨두고 간 그 청바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세탁은 했지만 여전히 그의 체취가 미세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청바지의 오른쪽 무릎 부분이 살짝 닳아 있고, 그가 항상 꽂아두던 동전 크기의 구멍이 뒷주머니에 그대로 있었다.
"새 출발을 위해 새 옷이 필요할 거라고 했지." 수민은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농담으로 들렸다. 어떻게 한 벌의 새 청바지가 이별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겠는가.
그들의 마지막 대화가 생각났다. 카페에서 태현은 뜬금없이 물었다. "수민아, 넌 낡은 청바지와 새 청바지 중에 뭐가 더 좋아?"
수민은 생각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새 청바지지. 낡은 건 버려야 하는 거잖아."
태현의 눈에 스쳐 지나간 그림자를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다. 다음 날, 그는 포장된 선물을 들고 와서 말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선물이야. 새 청바지. 내가 고른 건데... 나중에 열어봐."
그날 밤, 태현은 문자 한 통 없이 사라졌다. 전화는 꺼져 있었고, SNS 계정도 모두 비활성화되었다. 수민은 그가 바쁜 프로젝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알았다. 그 선물이 이별 선물이었다는 것을. 낡은 관계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그의 결심이 담긴.
수민은 청바지를 꼭 끌어안았다. 처음 입었을 때의 그 딱딱함, 몸에 맞춰지지 않은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뉴진스는 시간이 지나야 자신의 것이 된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런데 이 청바지는 이제 영원히 낯설게만 느껴질 것이다.
창밖의 비가 그치고 있었다. 수민은 천천히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그녀의 낡은 청바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편안한 것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태현이 남긴 새 청바지는 조심스럽게 접어 서랍 맨 아래에 넣었다.
때로는 새로운 것이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이별이라는 낡은 감정도 새롭게 포장될 수 있다는 걸, 수민은 이제야 이해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비가 그친 후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가끔은 낡은 것이 가장 진실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