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와 병원 사이: 거짓말의 무게
병원 대기실의 규칙적인 에어컨 소리가 내 거짓말처럼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체중계 위에 올라선 나는 간호사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숫자를 훔쳐보았다. 82kg. 3개월 전보다 2kg이나 더 늘었다. 내 손에 쥐어진 다이어트 일지에는 완벽하게 기록된 가상의 식단과 운동 기록들이 빼곡했다.
"김지영 님, 상담실로 들어오세요." 박 의사의 목소리에는 이미 실망감이 묻어 있었다. 병원 복도를 걸으며 나는 내 거짓말의 무게가 실제 체중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남편의 심장질환이 유전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패스트푸드를 사주면서도, 나는 병원에서만 건강한 척 연기했다.
"지영 씨, 솔직히 말해봐요. 정말 식단 조절하고 운동하고 있는 거 맞아요?" 박 의사의 책상 위에는 내 혈액검사 결과지가 펼쳐져 있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위험 수준을 넘어섰고, 혈당은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의사의 안경에 반사되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실망한 눈빛을 마주할 뻔했다.
"네, 물론이죠. 다만 스트레스가 좀..." 내 입에서 또다시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던 박 의사가 갑자기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병원 주차장 CCTV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난주 진료 후 내가 병원 앞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스루에 들르는 모습이 선명했다.
"환자를 감시하는 건 아니에요. 우연히 발견했죠." 박 의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냉정함은 날카로웠다. "지영 씨, 당신은 지금 의사를 속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속이고 있어요."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병원 벽에 걸린 인체 해부도가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다이어트를 위한 거짓말은 병원 밖에서도 이어졌다. 남편에게는 건강검진이 정상이라 했고, 엄마에게는 살이 빠지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에게는 내일부터 진짜 시작한다고 약속했다. 그 내일은 3년째 오지 않고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 규칙을 바꿔봅시다." 박 의사는 처방전을 찢으며 말했다. "약이 아니라 진실이 필요해요. 매일 식단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세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체중이 늘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가짜 기록은 안 됩니다."
병원을 나서는 순간,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 그의 물음에 나는 처음으로 망설였다. 거짓말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건너편 패스트푸드점의 간판이 유혹처럼 반짝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어쩌면 다이어트의 첫 걸음은 병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