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대표님귀신

대표님과 귀신: 사무실에 찾아온 특별한 방문자

나는 그날 밤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대표님이 결재할 서류가 새벽까지 마무리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던 그때, 내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움직였다.

"야근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대표님이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오늘 해외 출장을 떠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비행기 안에 있어야 했다. 더구나 그의 모습은... 반투명했다.

"놀라지 마시고 계속 일하세요. 당신 보고서는 항상 깔끔하니까 믿음이 가요."

나는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대표님의 실루엣은 미세하게 파문처럼 일렁였고, 그의 발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얼어붙은 내 등줄기로 차가운 땀이 흘러내렸다.

"대표님... 지금 비행기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래야 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한 지 30분 만에 문제가 생겼어요. 지금쯤 뉴스에 나올 거예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속보 알림이 연달아 떴다. '국제선 항공기 태평양 상공에서 추락, 생존자 없음 추정'.

"이 회사가 내 전부였어요. 20년을 바쳤죠. 그런데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갈 겁니다. 그게 내가 가장 두려웠던 진실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목소리는 에어컨 바람처럼 차갑게 사무실을 감쌌다. 대표님의 투명한 손가락이 내 보고서를 가리켰다. 그의 손이 페이지를 넘기려 했지만, 종이는 미동도 없었다.

"이런, 아직 적응이 안 되네요. 박 대리,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어요? 내 책상 서랍에 봉투가 하나 있어요. 그 안에 USB가 있는데... 그걸 삭제해주세요. 아무도 볼 필요 없는 내용입니다."

나는 떨리는 다리로 대표님의 사무실로 향했다. 열쇠는 비서 책상에 있었다. 서랍을 열자 그가 말한 봉투가 나왔고, USB가 들어있었다. 호기심에 컴퓨터에 꽂아보니 그것은 회사 자금을 빼돌린 증거들이었다. 모든 직원들의 퇴직금과 미래가 담긴 금액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대표님의 모습은 더욱 희미해져 있었다. "삭제했나요?"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요, 오히려 백업했습니다. 대표님, 왜 죽어서까지 직원들을 속이려고 하세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창밖으로 새벽빛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고, 대표님의 형체는 점점 더 흐려졌다.

"사람은 죽어도 죄는 남는군요. 대표님의 귀신이라도 이제는 직원들에게 정직해지셔야 할 때입니다."

해가 떠오르자 대표님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날 이후 가끔 늦은 밤 사무실에 혼자 남으면, 누군가 내 어깨 너머로 보고서를 읽는 듯한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어쩌면 대표님은 아직도 이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저지른 일의 무게를 이제야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