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귀신: 도서관의 속삭임
도서관 칠백십 번 서가 끝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새벽 두 시, 자정이 한참 지난 대학 도서관에는 나와 형광등의 희미한 윙윙거림, 그리고 시험 기간에 먹은 컵라면 냄새만이 남아있었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더 가깝게, 내 이름이 들려왔다.
"종석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처음엔 공부에 지친 환청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가 사이로 흘러나오는 희미한 숨소리는 너무도 실제적이었다. 차가운 금속 서가에 손을 짚자 손끝을 타고 서늘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책들 사이로 보이는 그림자는 형광등 불빛에 자꾸만 모양을 바꾸는 것 같았다.
우리 대학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 당시 도서관에서 숨어 공부하던 여학생이 계엄군에게 발각되어 죽음을 맞았고, 그 후로 시험 기간마다 새벽에 그녀가 나타나 도움을 청한다는 이야기. 선배들은 "걱정 마, 그녀는 공부 잘하는 학생만 찾아가서 답을 가르쳐 준대"라며 농담 삼아 말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농담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도서관의 초록색 탁상등만이 내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다.
"도와줘..."
목소리는 이제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몸을 돌릴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내 앞에 놓인 공책에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펜은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공책에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나도 너처럼 이 자리에서 통계학 시험 공부를 했어. 30년 전에."
나는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확히 내가 공부하고 있던 과목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동시에 이상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공포는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앉았다.
"네가... 그 선배...?"
답변 대신 내 공책에는 통계학 문제의 풀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몇 시간 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의 해답이 명쾌하게 적혀 있었다. 창백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고, 그 빛에 비친 책장 그림자는 한 여학생의 실루엣처럼 보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도서관에서 깨어났다. 모든 것이 꿈같았지만, 내 공책에 적힌 낯선 필체의 통계학 풀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메모가 남아있었다.
"지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나처럼."
나는 그날 통계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시험 기간이면 칠백십 번 서가를 찾는다. 때로는 도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로웠을 그 누군가와 잠시나마 함께하기 위해. 대학의 귀신이란 결국, 시간을 초월한 배움의 동반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