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간식 시간
베란다에 걸린 빨래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지는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거실에 자욱하게 퍼진 팝콘 냄새가 나를 휘감았다. 저녁 7시 50분. 드라마 시작 10분 전이었다.
나는 인생의 삼분의 일을 이 시간을 위해 산다. 매주 수요일 밤 8시, 나는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오직 드라마와 간식만 있는 나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오늘의 간식은 캐러멜 팝콘과 얼음 띄운 콜라, 그리고 어제 남긴 치즈케이크 한 조각. 작은 유리 테이블 위에 간식들을 정성스레 놓고 리모컨을 들었다.
"오늘 방송 결방이래." 갑자기 들려온 남편의 목소리에 내 손가락이 리모컨 위에서 굳었다.
"뭐라고?" 내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대통령 연설 특집방송 때문에 오늘 드라마 안 한대. 어제 공지했다던데."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내내 기다려온 드라마의 결정적 장면—주인공들의 첫 키스 신이 오늘이었다. 소셜미디어는 이미 이 장면을 예고하는 티저로 들썩였고, 나는 사무실에서도 이 순간만 상상하며 버텨왔다.
TV 화면에는 예상대로 정장을 차려입은 대통령이 국가 경제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두 시간짜리 특별 연설이라고 했다. 팝콘 한 줌을 입에 넣었지만,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괜찮아, 다음 주에 보면 되지." 남편이 위로했지만, 그의 말은 마치 '비가 오니까 우산을 쓰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들렸다.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7일을 기다려야 하는 나의 마음처럼 잔잔하지 않고, 폭우처럼 격렬했다. 팝콘 그릇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드라마 시청 모임 단체 채팅방이었다.
"급공지! 넷플릭스에 오늘 에피소드 선공개됐어!!!"
나는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메시지를 읽었다. 노트북을 허겁지겁 켜고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정말이었다. 방송사 측에서 결방 보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에피소드를 미리 공개한 것이었다.
다시 간식 테이블 앞에 자리잡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어느새 남편도 내 옆에 앉아있었다. 그가 내 팝콘을 한 움큼 집어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흘겼겠지만, 오늘만큼은 그와 이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첫 장면이 시작되고, 나는 캐러멜 팝콘을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가끔은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바로 이런 작은 간식 시간 속에 숨어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