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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날씨

날씨가 바뀌는 드라마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태풍이 올 때마다 네 인생은 한 페이지를 넘긴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는.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커졌다. 뉴스에서는 십 년 만의 최악의 태풍이라고 했지만, 나는 대본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일이 새 드라마의 첫 촬영이었다. 주연이었다. 데뷔 십 년 만에 얻은 주연.

"이번에 태풍이 지나가면 서울은 한바탕 바뀔 거야." 기상캐스터의 무심한 한 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핸드폰이 울렸다. 제작사 대표였다. 손이 떨렸다. 바람 소리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미안하네. 투자사에서 갑자기 마음을 바꿨어. 네임밸류가 있는 배우를 원해. 자네 역할은..."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십 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창밖으로는 나무가 휘청거렸고, 거리의 간판들이 떨어져 나갔다.

소파에 쓰러져 하루를 날려버렸다. 밤이 되어서야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태풍은 지나갔다.

아침, 맑은 하늘이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이지안 배우님? 영화 '마지막 계절'의 김민준 감독입니다. 어제 드라마 하차 소식을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저희 영화의 주인공을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어제 태풍을 보며 당신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창밖은 태풍이 쓸고 간 자리가 생생했다. 쓰러진 나무들, 부서진 간판들. 그러나 그 너머로 이전에는 가려져 있던 산의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태풍이 올 때마다 인생은 한 페이지를 넘긴다. 때로는 무너져 내려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 마치 나쁜 날씨가 끝난 뒤에야 선명해지는 하늘처럼.

손에 든 핸드폰이 가벼웠다. "네, 출연하겠습니다." 내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창문을 열자 태풍이 쓸고 간 도시의 냄새가 밀려들었다. 비 냄새, 젖은 아스팔트 냄새, 새로 시작하는 날의 냄새. 마치 새 드라마의 첫 장면처럼, 내 인생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