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노래: 마지막 화음을 찾아서
미완성된 노래는 방 안에 유령처럼 떠돌았다. 지수는 피아노 앞에 앉아 같은 화음을 열 번째 반복하면서도 다음 음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감 시한은 내일 아침. 그의 첫 드라마 OST 작곡 의뢰였다.
"그 드라마 주인공처럼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는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가 작곡해야 하는 노래는 사랑을 잃은 남자의 아픔을 담아야 했다. 하지만 지수는 진짜 사랑을 해본 적도, 진짜 이별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프로듀서였다.
"어떻게 돼가? 내일 녹음 스케줄 잡혀 있어."
"조금만 더 시간을..." 지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통화가 끊겼다.
답답함에 밖으로 나왔다. 초여름 밤공기가 후텁지근했다. 무작정 걷다가 한강변에 도착했을 때, 한 여자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여자는 놀란 듯 그를 돌아보았다. 눈물로 번진 화장. 하지만 그 눈빛이 담고 있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거기엔 분노와 체념, 그리고 어떤 결단이 섞여 있었다.
"오늘 방영된 드라마 봤어요?" 여자가 갑자기 물었다.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주인공이 결국 죽었어요. 바보같이..." 여자의 음성이 떨렸다. "현실에선 아무도 그런 식으로 사랑하지 않아요. 허구라서 아름다운 거죠."
바람이 불었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공중에 흩날렸다. 그 순간, 지수의 귓가에 멜로디가 스쳐 지나갔다.
"노래 한 곡 들어주실래요?" 지수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 앱을 켰다. 그리고 허밍으로 멜로디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여자가 물었다. "이게 뭐예요?"
"당신이 준 노래예요. 제가 작곡하는 드라마 OST."
여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 이야기 들어볼래요? 진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들은 밤새 이야기했다. 여자의 실패한 사랑과 배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에 대해. 동이 틀 무렵, 지수는 노트북을 펼쳐 한강변에서 노래를 완성했다.
일주일 후, 그 노래는 드라마에서 흘러나왔다. 시청자들은 왜 이 노래가 이토록 가슴에 와닿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수는 알았다. 진짜 드라마는 TV 속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실제 삶의 화음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지금도 한강변에서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린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날 밤 완성된 멜로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