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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드라마: 아내가 된다는 것

그녀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건 결혼식 두 달 전이었다. 현실은 TV 드라마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유나는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차가운 문자 메시지가 십 년의 꿈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밖에서는 봄비가 창문을 두드렸고, 유나는 그 소리에 맞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배우를 그만두는 건 아니지?" 약혼자 민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유나는 대답 대신 커피잔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도자기의 차가운 감촉이 현실감을 주었다. "결혼하면 달라질 거야. 우리 둘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거지." 민수의 말에 유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말이 위로가 되는지, 아니면 또 다른 족쇄처럼 느껴지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결혼식 날, 화장실 거울 앞에 선 유나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을 바라보았다. 축하하러 온 옛 연극부 동기들이 "역대급 신부"라고 칭찬했지만, 유나의 눈에는 자신이 마치 잘못 캐스팅된 배우처럼 보였다. 이 드레스, 이 화장, 이 역할이 정말 나에게 맞는 걸까? 거울 속 낯선 여자가 묻는 듯했다.

"아내가 됐네." 결혼식 다음 날 아침, 민수가 유나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유나는 그 단어가 입안에서 녹지 않는 사탕처럼 느껴졌다. 아내. 새로운 대본을 받은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결혼 후 석 달, 유나는 시간이 남을 때마다 연기 오디션 공고를 훑어보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집안일을 하면서도, 모니터 화면은 늘 그녀를 유혹했다. 작은 배역이라도 괜찮으니, 다시 연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의 일상을 잠식해갔다.

"오늘부터 지역 극단에서 연습해볼 거야." 어느 저녁, 유나는 테이블 위에 종이 한 장을 올려놓았다. 지역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연극 워크숍 안내문이었다. 민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직장 다니면서 할 수 있어?" 염려와 혼란이 섞인 목소리. 유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 아내라는 역할만으로는 내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아."

워크숍 첫날, 낡은 문화센터 연습실에 들어선 유나는 달콤한 먼지 냄새와 오래된 목재 향기에 전율했다. 여기는 화려한 TV 스튜디오도, 큰 극장도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맨발로 오래된 나무 마루를 밟는 감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랐다.

"당신이 연기할 때 행복해 보여." 한 달 후 공연을 보러 온 민수가 말했다. 작은 지역 극장, 관객은 고작 서른 명. 하지만 유나의 얼굴은 TV 드라마의 주연보다 더 빛났다. 그날 밤, 유나는 깨달았다. 아내라는 역할도, 배우라는 꿈도 모두 그녀의 인생 드라마를 이루는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 그녀만의 드라마를 써나가는 방법이었다.

매일 밤, 유나는 일기장에 그날의 장면들을 적었다. 회사에서 돌아온 민수에게 저녁을 차려주는 아내의 모습, 극단에서 대사를 외치는 배우의 모습. 어쩌면 인생은 단 하나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할을 오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유나는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인생 드라마에서 아내이자 배우인 주인공으로, 다음 장면을 위한 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