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 포켓몬: 누구나 자신만의 전설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큰 드라마는 내가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농담처럼 그 말을 던졌다. 서른여덟의 평범한 회사원,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가 진심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도.
아버지의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게임보이와 '포켓몬스터 레드' 카트리지를 발견한 건 그의 장례식 다음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의사는 그런 일이 일어날 징후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기장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도 꿈에서 그들을 만났다. 피카츄의 전기가 내 손끝에서 파직거리고, 리자몽의 불꽃이 하늘을 태웠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언제나 가장 괴롭다."
일기장 페이지마다 세밀하게 그려진 포켓몬들과 치밀한 전략 노트. 마치 실제로 그 세계를 여행한 사람처럼 상세했다. 회사에서는 성실한 중간 관리자였던 아버지가 밤마다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게 쓴 편지가 있었다. "현실은 때로 우리가 꿈꾸는 모험만큼 화려하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모험을 꿈꾸는 마음만은 절대 잃지 마라. 내 포켓몬 여행은 게임 속에서 끝났지만, 너는 다를 수 있어. 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넌 주인공이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삶이 얼마나 평범했는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평범한 겉모습 아래 얼마나 드라마틱한 내면 세계가 숨겨져 있었는지를.
일주일 후, 나는 사표를 냈다. 십 년간 미루어왔던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위해. 첫 작품의 제목은 '포켓몬 마스터의 비밀 일기'로 정했다. 스마트폰을 켜고 게임보이 에뮬레이터를 다운로드했다. 아버지의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자 화면에는 리그 챔피언의 자리에 서 있는 그의 캐릭터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결코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갔을 뿐. 게임 속 캐릭터 이름은 내 이름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이름으로 완성해놓았던 것이다.
창밖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마치 포켓몬 세계의 하늘처럼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 최고의 드라마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겨진 비밀 세계,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