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게임: 생과 사의 경계에서
"당신은 방금 죽었습니다." 모니터 화면에 붉은 글씨로 뜬 메시지를 보며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삐---소리와 함께 심전도가 평평하게 변하는 순간, 게임오버 알림이 뜨고 난 다시 시작 버튼을 누른다. 이것이 내가 6개월째 하고 있는 일이다.
나는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의 주치의다. 아니, 정확히는 '가상' 중환자실의 의사다. '라이프라인: 의사의 선택'이라는 VR 시뮬레이션 게임의 베타 테스터로, 실제 응급 상황을 완벽히 재현한 가상 환경에서 의료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 게임은 의대생들의 훈련을 위해 개발 중이지만, 현직 의사인 내게도 매번 땀을 쏟게 만든다.
오늘의 환자는 57세 남성, 갑작스러운 흉통과 호흡곤란으로 입원했다. 심근경색 증상이 명백했지만, 환자의 알레르기 정보가 누락되어 있었다. 나는 표준 치료법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사망이었다. 게임 속에서의 실패지만,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시도해볼까요, 김 교수님?" 옆에서 지켜보던 개발자 정 씨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 숨겨진 진지함을 알아차렸다.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실제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이었고, 내 선택은 미래 의사들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VR 헤드셋을 다시 쓰고 게임에 접속했다. 이번엔 더 세심하게 환자의 이전 기록을 훑어보았다. 5년 전 다른 병원에서의 미세한 알레르기 반응 기록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약물을 선택했다. 환자의 상태는 안정되었고, 화면에 녹색 글씨로 '성공적인 치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헤드셋을 벗으니 정 씨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완벽합니다! 실제 케이스에서도 이 환자는 표준 약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사망했죠. 김 교수님처럼 세심하게 기록을 확인했다면 살았을 겁니다."
그 말에 내 가슴이 무거워졌다. 게임 속 실패는 리셋 버튼 하나로 되돌릴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실패는 되돌릴 수 없다. 내가 놓친 작은 디테일들, 바쁨을 핑계로 지나친 미세한 정보들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음 날, 실제 병원 회진을 돌며 나는 평소보다 환자 차트를 더 꼼꼼히 읽었다. 3번 병상의 노인 환자가 투약 전 알레르기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임이 아니었다면 놓쳤을 디테일이었다.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 우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레지던트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미소만 지었다. 그는 아직 모른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우리가 매일 생사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