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귀신: 흰 가운을 입은 그녀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새벽 3시 17분, 제3병동 복도 끝에서 흰 가운을 입은 채로. 수많은 CCTV에 포착되지 않으면서도 간호사들의 시선만은 절대 피하지 않는다.
내가 이 종합병원의 야간 경비로 일한 지 6개월째. 처음엔 그저 오래된 건물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낡은 배관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 바람이 창틀을 때리는 소리, 퇴근한 의사들의 잊혀진 호출기 소리. 하지만 점점 그 '소리'는 형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병원 안은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떠나간다. 오늘도 중환자실에서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의 흐느낌이 멈춘 심장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그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흡연구역으로 향하는 길에 그녀와 마주쳤다.
"또 왔네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흰 가운을 입은 그녀는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다. 젊은 여자의 모습이지만 눈빛은 오래되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무게를 너무 오래 견뎌온 듯한 깊이. 처음엔 두려웠지만 이제는 이상하게 익숙해져 버렸다.
"오늘은 누구 데리러 왔어요?"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605호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3개월째 의식 없이 누워있는 20대 여학생이 있다.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 가족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만, 의사들의 표정은 이미 결론을 내린 듯했다.
"아직은 안 돼요. 그녀의 어머니가 매일 밤 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적어도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귀신은 처음으로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죽음을 데려오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마지막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존재.
다음 날 아침, 605호실에서 심장 박동이 멈췄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은 채 웃고 있었다. "어젯밤에 꿈에서 만났어요. 딸이 이제 괜찮다고, 가도 된다고 말했어요."
퇴근길, 나는 흰 가운을 입은 그녀를 다시 마주쳤다. 이번엔 병원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얼굴이 어디서 봤는지 기억났다. 10년 전 이 병원에서 근무하다 과로로 쓰러진 레지던트 의사. 죽어서도 환자를 지키는 의사.
병원의 자동문이 열리고 새로운 환자가 실려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