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데이트: 13호실의 약속
간호사 정아는 매일 아침 병원 13호실의 환자 차트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상태는 '변화 없음'이었다. 3개월째 계속된 무의식 상태. 그러나 정아에게 이 차트는 단순한 의료 기록이 아니라, 가장 특별한 데이트 초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민준 씨. 오늘은 화요일이에요. 창밖엔 벚꽃이 만개했답니다." 정아의 목소리는 소독약 냄새 사이로 살며시 퍼져나갔다. 그녀의 손끝이 그의 차가운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사람들은 의식 없는 환자에게 이렇게 헌신하는 정아를 성녀처럼 여겼다. 그러나 아무도 정아와 민준의 진짜 관계를 몰랐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 없는 사이였다. 민준이 의식을 잃기 전, 정아는 그저 그를 멀리서 바라보던 간호사였을 뿐이었다.
"오늘은 당신이 좋아한다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가져왔어요." 정아는 이어폰을 그의 귀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그의 취향을 '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민준의 SNS에서 본 정보였다.
모니터에서 울리는 규칙적인 심장 소리와 함께, 정아는 오늘의 데이트를 시작했다. 살짝 마른 그의 입술에 보습제를 발라주며, 그녀는 첫 만남을 회상했다. 사고로 실려 온 그날, 의식을 잃기 직전 민준이 그녀를 바라본 눈빛.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던 그 순간이 정아의 가슴에 깊게 박혔다.
"어제는 당신 어머니가 다녀가셨어요. 걱정 많이 하시더라고요." 정아는 그의 머리카락을 빗어주며 속삭였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참, 오늘 결정했어요. 당신이 깨어나면 진짜 데이트 신청할 거예요."
그때였다. 정아의 손가락 사이로 민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심장 모니터의 소리가 미묘하게 변화했다. 정아는 숨을 멈췄다. 실제로 움직인 건지, 자신의 바람이 만든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민준 씨?" 정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정아는 의사를 부르려 벨을 누르려다 멈췄다. 단 몇 초만이라도, 이 순간을 혼자 간직하고 싶었다.
민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정아는 그의 귓가에 귀를 기울였다.
"매일... 기다렸어요." 바람 같은 목소리였다. "당신의... 데이트를..."
정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몇 개월간 그는 모든 것을 들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의식 없는 척, 깨어날 수 없는 척하면서. 그녀의 일방적인 고백에 화답하기 위해, 그는 병상에서의 데이트를 견뎠던 것이다.
정아가 벨을 누르려는 순간, 민준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금은... 우리 둘만의 시간이에요." 그의 미소가 햇살보다 밝게 병실을 채웠다. 13호실은 이제 그들의 첫 진짜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