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병원에서의 생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병원의 형광등이 깜빡이는 순간, 나는 죽은 줄 알았던 환자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38일째 계속되는 정전 속에서 발전기가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복도 끝에서는 누군가 울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약품, 식량, 의료진,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이 부족했다. 7층 중환자실에 홀로 남은 의사로서, 나는 이제 '치료'가 아닌 '선택'을 해야 했다. 누구에게 마지막 항생제를 투여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남은 산소통을 열 것인가. 생존의 윤리는 의대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김 선생님, 5호실 환자가..." 간호사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잠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사치였다.
발걸음을 서두르며 5호실로 향했다. 복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이미 폐허였다. 전염병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몇 주 전, 정부는 '격리'라는 이름 아래 이 병원을 버렸다. 외부와의 모든 통신은 끊겼고, 물자 보급도 중단됐다. 우리는 그저 잊혀진 섬이었다.
5호실 환자는 열여덟 살 소년이었다. 이름은 준호. 전염병 초기에 부모님을 잃었고, 마지막 가족이던 여동생마저 지난주에 숨을 거뒀다. 그는 기적적으로 항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자, 나의 개인적인 죄책감이었다. 그의 여동생에게 마지막 산소를 줄 수 없었던 의사.
"준호야."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불렀다. 눈을 뜬 소년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 꿈을 꿨어요."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또렷했다. "비가 내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시 거리에 나와 있었어요. 병원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나는 숨을 삼켰다. 그의 혈액 샘플에서 항체 수치가 급증했다. 이론적으로는 백신 개발의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장비도, 인력도 없었다. 외부와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남은 식량과 물, 의약품을 모두 준호의 회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른 환자들에겐 더 이상의 적극적 치료가 아닌 완화 의료만 제공하기로. 어쩌면 이것이 의사로서 내린 가장 잔인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은 때때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냉혹한 타협을 요구한다.
열흘 후, 병원 옥상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준호의 혈액 샘플을 담은 작은 용기를 들고, 나는 생각했다. 생존이란 단순히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숨 쉴 이유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빛을 향해 뛰어가며, 나는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사치를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