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소개팅: 응급실에서 만난 인연
응급실 링거 침대에 누워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엄마, 난 괜찮으니까 걱정 마. 그냥 가벼운 탈수야." 고개를 돌려보니 내가 지난주 소개팅에서 만났다가 '급한 병원 일'로 중간에 자리를 뜬 그 여자였다. 하필 오늘 응급실에서 다시 만나다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알아볼까 두려웠다. 당시 그녀가 갑자기 자리를 떠난 뒤 속으로 '병원 핑계는 정말 식상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정말 급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김지현 선생님, 이제 좀 괜찮으세요? 3일 연속 36시간 근무하시더니 결국 쓰러지셨네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이 병원 의사였고, 소개팅 당일에도 정말 급한 병원 일이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쌌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 이 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들켰다. "지난번 소개팅에서 뵀던 분 아니세요?"
억지로 고개를 돌려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지난번에 그만..."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자리를 떠서 죄송했어요. 응급 수술이 들어와서..."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어색한지 간호사도 느꼈는지 웃으며 말했다. "와, 드라마 같은데요. 소개팅에서 만났다가 응급실에서 재회라니!"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 계신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아, 장염이요. 어제 먹은 회가 안 좋았나 봐요." 갑자기 복통이 다시 찾아왔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의사 모드로 전환해 내 차트를 살펴봤다. "아, 검사 결과가 나왔네요. 비브리오균 식중독이에요. 심하진 않아 보이지만, 항생제 맞고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제야 그녀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소화기내과 김지현'. 소개팅 자리에서 못다 한 대화를 링거를 맞으며 이어나갔다. 그녀는 근무 중이 아니었지만, 틈틈이 내 상태를 확인해주었다.
퇴원하는 날, 용기를 내어 물었다. "다음에는 병원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당신이 환자가 아닌 날에, 제가 의사가 아닌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그녀는 웃으며 처방전을 건넸다. 그 뒷면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번엔 응급상황 없이 끝까지 대화할 수 있길 바라요." 그날 이후로, 우리는 병원 복도를 지날 때마다 그 어색했던 첫 소개팅과 예상치 못한 재회를 떠올리며 웃곤 한다. 가끔은 가장 아픈 순간에 가장 달콤한 인연이 시작된다는 것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