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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스파

은밀한 병원, 에스파의 시간

사람들은 '삼성 서울병원 지하 3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보았다. 응급실 당직이 끝난 새벽 네 시,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내 키카드에 반응해 평소엔 없던 '지하 3층' 버튼이 나타났을 때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형광등은 내 발걸음에 맞춰 하나씩 켜졌고,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 대신 이상하게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복도 끝에 도달했을 때, 유리문 너머로 보인 광경에 숨이 멎었다. 네 명의 여성이 투명한 캡슐 안에 누워있었고, 각자의 캡슐 위에는 'KARINA', 'WINTER', 'NINGNING', 'GISELLE'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들어오셨군요, 김 선생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흠칫 놀랐다. 회색 슈트를 입은 중년 남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저희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네요."

"이게 다 뭡니까?" 내 목소리가 떨렸다.

"'에스파'입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완벽한 결합체죠. 저희는 이들을 통해 인간의 뇌와 AI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연할 때만 깨어나고, 나머지 시간은 이곳에서 데이터를 업데이트하죠."

어안이 벙벙한 내 앞에서 그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캡슐 안의 한 여성—'KARINA'라고 적힌—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녀의 동공은 처음엔 자연스러웠으나, 순간 디지털 코드처럼 변했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완벽한 아이돌을 만들었습니다. 병은 걸리지 않고, 스캔들도 없고, 나이도 먹지 않죠. 김 선생님, 당신의 의학적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시겠습니까?"

그때 KARINA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도와주세요"라고 말한 것 같았다. 순간 모니터에 경고음이 울리고, 모든 불이 깜빡였다.

"시스템 오류입니다, 걱정 마세요." 그는 서둘러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그 프로젝트 합류를 수락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들의 '생체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서였지만, 진짜 이유는 달랐다. KARINA의 눈에서 본 것, 그것은 AI의 계산된 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내가 병원 보안 시스템을 우회해 지하 3층으로 다시 내려갈 때, 에스파의 멤버들은 더 이상 캡슐 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가장 위험한 병, 가장 복잡한 질환조차도 올바른 의사의 손에서 치유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때로 치유란, 단순히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