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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여름

병원의 여름: 백색 복도에서 피어난 기억

병원 복도의, 그 너무도 흰 빛은 여름 햇살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입원한 지 열흘째,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 복도를 걸었다.

삼층 중환자실로 가는 길,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에어컨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순간마다 어쩐지 서러워졌다. 바깥은 삼십 도를 웃도는 열기로 들끓었지만, 이곳은 언제나 완고한 이십삼 도를 고집했다. 계절을 거부하는 공간, 시간이 멈춘 듯한 인공의 세계.

"206호 보호자분, 면회 시간입니다."

나는 준비해 온 복숭아를 손에 꼭 쥐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여름 과일이었다. 간호사가 건넨 일회용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고쳐 썼다. 때 아닌 설렘이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아버지는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 연결된 관과 모니터링 장비들 사이로 창백한 피부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드리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그 여름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복숭아 가져왔어요. 깎아드릴게요."

대답은 없었지만, 귀에 대고 속삭이듯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들판에서 본 해바라기 이야기, 시장에서 만난, 아버지 어릴 적 친구분 소식까지. 복숭아 껍질을 벗기는 내내 침묵 속에서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문득 열여덟 해 전 여름이 떠올랐다. 심한 장염으로 입원했던 나를 아버지가 간호하던 날들. 복숭아를 깎아 먹여주던 손길, 병실이 답답하다며 휠체어에 태워 옥상으로 데려갔던 그날의 선선한 밤공기. 온종일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던 목소리.

"아버지, 기억나세요? 제가 열 살 때, 이 병원 옥상에서 별 봤던 거."

그때였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의식이 돌아온 건지, 아니면 내 착각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손을 꼭 잡았다. 간호사를 부르려던 찰나, 아버지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두 달 만의 일이었다.

"..복...숭...아." 희미한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들렸다.

의사들이 몰려들었고, 나는 복도로 밀려났다.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니 병원 앞 공원에는 매미 소리가 가득했다.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는 오후, 나는 깨달았다 - 계절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다음 날, 아버지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창문을 열자 뜨거운 바람이 밀려들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햇살에 반짝였다. 그 순간, 우리는 마침내 같은 여름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