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의 여사친: 마주친 세계
병원 복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삼 년 만의 재회는 소독약 냄새와 희미한 형광등 불빛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대학 시절 내 곁에 늘 있었던 그 여사친은, 이제 하얀 가운을 입고 차트를 손에 든 의사가 되어 있었다.
"민준아, 너 여기서 뭐 해?"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과 똑같았다. 달콤한 카라멜 같은 음색, 늘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살짝 올라가는 어조. 하지만 그날 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차가운 문자들이 스마트폰 화면 위로 겹쳐 보였다.
"아버지가 입원하셨어." 내 대답은 짧았다. 주머니 속 손이 떨리는 걸 그녀가 알아차리지 못하길 바랐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뇌졸중 진단은 내게 폭탄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폭발음이 귓가에 맴도는 와중에 만난 것이 그녀였다.
세진이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어느 병실이신데? 내가 담당은 아니지만 살펴볼게." 세진의 손이 내 어깨에 가볍게 닿았다. 그 온기가 사라진 3년을 단번에 지워버릴 것만 같았다.
403호로 걸어가는 동안 병원의 소리들이 귓가를 채웠다. 휠체어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간호사들의 분주한 발걸음. 세진의 구두 소리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녀가 물었다. 무수한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너 없이 외로웠어', '널 잊으려고 애썼어', '매일 밤 네 연락을 기다렸어'.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건 "그냥 그렇게"라는 무의미한 세 단어뿐이었다.
아버지의 병실 앞에서 그녀는 멈춰 섰다. "민준아, 오늘 퇴근하고 커피 한 잔 할래?" 그녀의 목소리에는 망설임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그랬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걷는 줄타기와도 같았다.
병실 문을 열기 전, 그녀의 가운 주머니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결혼반지였다. 내 시선을 알아챈 그녀는 왼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세진은 내 아버지를 전문적인 의사의 눈으로 살폈다. 상태를 설명하는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단어들이 내게는 외국어처럼 들렸다. 아버지가 깨어날 가능성, 재활 치료의 중요성, 향후 관리 방법. 그 모든 말 속에서 내가 붙잡은 건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였다.
"걱정 마, 내가 도울게."
그날 밤 병원 카페테리아에서 우리는 세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결혼생활, 내 실패한 연애들, 우리가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 하얀 병원 불빛 아래, 우리는 다시 스무 살의 여사친과 남사친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우리 모두 현실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