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피어난 짝사랑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순간, 그녀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내 심장은 모니터에 표시된 맥박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병원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김간호사의 하얀 유니폼은 형광등 아래서 마치 신부의 웨딩드레스처럼 빛났다.
3개월 전, 오토바이 사고로 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처음 그녀를 보았다. 깨어나자마자 본 첫 얼굴이 그녀였다. 통증 속에서도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귀에 위안으로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김상우 씨?"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 나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재활치료가 길어지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내 다리 근육을 마사지하며 어제 본 영화 이야기를 했고, 내 약을 가져오며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왼손 약지에 반짝이는 반지는 내게 철조망처럼 느껴졌다.
"오늘 퇴원하시는 날이네요." 그녀가 차트를 들고 내 병실에 들어섰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앞으로는 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감사했습니다." 내가 겨우 말을 꺼냈다.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닌데. 그녀가 내민 퇴원서류에 서명하며 손이 떨렸다. 셀 수 없이 많은 밤, 그녀에게 고백하는 장면을 상상했지만, 용기는 항상 나를 배신했다.
"이거..." 그녀가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제 개인 연락처예요. 혹시 뭐 필요하시거나... 그냥..."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실은 계속 연락하고 싶어서요."
그 순간 내 심장은 멈춘 듯했다. 그녀의 손을 보니 반지가 없었다. 내 혼란스러운 눈빛을 읽었는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그냥 환자들이 자꾸 번호 물어봐서 끼우던 가짜 반지예요. 근데 상우 씨한테는 써먹기 좀 그랬네요."
소독약 냄새, 형광등 불빛, 병실의 딱딱한 침대, 창문 너머 보이는 잘려나간 가로수들.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아름다워 보였다. 병원이란 아픔을 치료하는 곳이지만, 때로는 새로운 상처—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상처—를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퇴원하는 날, 휠체어를 밀며 그녀가 내 귀에 속삭였다. "사실 처음부터 당신이 깨어나길 기다렸어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짝사랑이라 생각했던 감정은, 어쩌면 시작부터 우리 둘 다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