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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드라마

보드게임 드라마: 말이 되는 승부

"사람이 말이 되는 순간이 있다." 할아버지는 장기판 위의 말을 집어 들며 내게 말했다. 당시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보드게임 카페 '체크메이트'의 한 구석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우리 다섯 명의 손가락 끝에는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카페 매니저가 가져다 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미 물처럼 변해버렸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테이블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카드를 뽑을 때마다 종이 스치는 소리가 긴장감을 더했다. 창문 밖으로는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팽팽한 침묵을 깨뜨렸다.

"네 차례야, 민지." 진우가 말했다. 민지는 손에 든 카드를 꼭 쥐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늘 이 게임의 승패는 민지의 다음 한 수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 모임은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시작되었다. 각자 다른 과였지만, 보드게임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였다. 졸업 후에도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모였고, 오늘은 그 스물다섯 번째 모임이었다. 하지만 이번 게임은 달랐다. 이것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었다.

"너희에게 말할 게 있어." 게임을 시작하기 전 민지가 말했다. "다음 주에 캐나다로 떠나. 3년 계약이야."

그 순간부터 게임의 성격이 바뀌었다. 말없이 주사위를 굴리고, 카드를 뽑았다. 누구도 평소처럼 농담을 던지거나 웃지 않았다. 이 게임은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승부였다.

민지의 손가락이 카드 위에서 떨렸다. 그녀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우리가 매달 모여 했던 것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말이 되어주고 있었다.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기권할게." 내가 말했다.

모두의 눈이 나를 향했다. 진우가 물었다. "왜?"

"민지의 마지막 게임인데, 승리로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바보야." 민지가 말했다. "이런 동정은 필요 없어. 내가 정정당당하게 이길 거니까."

민지는 마지막 카드를 내려놓았다. 예상대로 그녀가 이겼다. 우리는 박수를 쳤다. 이제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갔다. 민지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3년 뒤에도 이 자리에서 만나자. 그때도 내가 이길 테니까."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서로 만나 하나의 긴 줄기를 이루었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비록 각자의 길을 가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 또 다른 게임을 시작할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때로는 사람이 말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인생 게임판 위에서, 잠시나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