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밤: 부모님과의 잊혀진 시간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20년 만에 거실을 가득 채웠다. 주사위가 테이블 위를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야, 이 녀석! 또 내 땅에 걸렸구나!" 아버지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의 손금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었다. 한때는 그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려주던 기억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을까.
부동산 중개업자인 나는 실제 건물을 사고팔며 살았지만, 이 작은 보드게임 속 가상의 부동산에 이렇게 흥분하는 자신이 낯설었다. 어머니는 차례를 기다리며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어릴 때도 꼭 저렇게 화냈었지. 지금 네 표정이 딱 열 살 때랑 똑같다니까."
어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난 10년간 우리 가족은 명절에도 겨우 한 자리에 모였고, 그마저도 형식적인 대화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은퇴, 어머니의 작은 수술, 내 이혼... 우리는 각자의 상처를 혼자 끌어안고 살아왔다.
오늘 저녁,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TV도, 휴대폰도 쓸 수 없게 되자 어머니가 옛날 장난감 상자에서 꺼낸 이 낡은 보드게임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로 모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 파산이야!" 내가 외치자 어머니는 실제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아버지가 쉽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내가 은퇴할 때 회사가 어려워서 퇴직금을 제대로 못 받았어. 요즘 살림이 빠듯해."
순간 거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촛불 빛에 비친 아버지의 눈가에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작은 카드와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던 어머니도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십 년 전 같았으면 "왜 진작 말씀 안 하셨어요"라며 화를 냈을 텐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다음 주에 제 사무실로 오세요. 아버지 경험이면 우리 부동산에서 일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촛불이 깜빡였다.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것이 촛불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날 밤 우리는 게임에서는 서로를 속이고 경쟁했지만, 현실에서는 오랜만에 가족이 되었다. 전기가 들어왔을 때도 아무도 TV를 켜지 않았다. 보드게임 위에 놓인 작은 말들처럼,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더 큰 게임판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