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생존기: 주사위가 결정하는 운명
주사위가 멈췄을 때, 세상도 함께 멈췄다.
현우는 방 한가운데 앉아 식은땀을 흘리며 게임판을 바라보았다. 보드게임 '데스티니'의 마지막 라운드. 그의 말은 붉은색 구역에 멈춰 서 있었다. 방 안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이 숨통을 조이는 듯했다. 창문 밖으로는 회색빛 도시가 비에 젖어 번져갔지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이 게임판뿐이었다.
"당신의 선택이 운명을 결정합니다." 게임 카드에 쓰인 은색 글씨가 방 안의 희미한 불빛에 반사되어 불길하게 빛났다.
처음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단순한 오락거리였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빈티지 보드게임. 패키지에는 '당신의 운명을 건 게임'이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현우는 그저 마케팅 문구로 여겼다. 그러나 첫 주사위를 굴린 순간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돈을 잃을 때마다 현실의 은행 계좌에서도 돈이 사라졌다. 게임 속 캐릭터가 다쳤을 때, 그의 몸에도 같은 자리에 멍이 들었다. 그리고 함께 게임을 시작했던 친구 세현이 게임에서 탈락했을 때... 그는 현실에서도 그대로 사라졌다.
타닥, 타닥. 보드게임 속 시계 초침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현우의 손은 떨려왔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벽에 붙은 포스터의 가장자리가 말려 올라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져 숨쉬기가 힘들었다.
"나는... 항복을 선택합니다."
그 순간 게임판이 일렁였다. 룰북에는 없던 선택이었다. 게임판 위의 말들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고, 검은 연기가 게임판에서 피어올랐다.
"규칙을 어긴 자, 영원히 게임 속에 갇히리라."
보드게임의 플라스틱 재질이 갑자기 따뜻하게 느껴졌다. 현우는 자신의 손가락이 하나씩 게임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경악하며 지켜봤다.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의 비명은 방 안에 메아리쳤지만, 아무도 듣는 이는 없었다.
일주일 후, 현우의 방에는 새 임차인이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데스티니'라는 보드게임이 놓여있었고, 게임판 위에는 작은 붉은색 인형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새 임차인은 호기심에 게임 상자를 열었다.
"새로운 플레이어를 환영합니다. 주사위를 굴려 운명을 결정하세요."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졌고, 게임판 위의 작은 플라스틱 인형들은 모든 것을 지켜보며 침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