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보드게임: 마지막 턴
우리의 이별은 보드게임처럼 정해진 규칙 안에서 진행됐다. 그날 저녁, 그녀는 오래된 나무 테이블 위에 '인생게임'이란 상자를 올려놓았다. 상자에서 나온 건 우리가 함께 만든 추억들이었다.
"당신 차례야." 그녀가 말했다.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가 주사위 굴리는 소리보다 컸다.
테이블 위로 퍼진 카드들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담고 있었다. 첫 데이트했던 카페의 영수증, 제주도 여행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그녀의 생일에 내가 쓴 손편지. 모두 게임 말이 되어 보드판 위를 이동했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숫자 4가 나왔다. 그녀는 '진실의 카드'를 뽑았다.
"더 이상 같은 방향으로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카드를 읽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코끝이 붉어져 있었다.
창밖으로 비가 더 거세게 내렸다. 내 차례가 되었다. 주사위는 1이 나왔다. 단 한 칸만 이동할 수 있는 숫자. '후회의 카드'를 집어들었다.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내 인생의 보드게임에서 가장 행복한 구간이었어."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게임은 계속됐다. 우리는 말없이 카드를 뽑고, 주사위를 굴리고, 게임 말을 움직였다. 그녀가 '미래' 칸에 도착했을 때, 게임 박스 아래에 숨겨두었던 반지 케이스를 발견했다. 내가 세 달 전부터 준비했던 것.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타이밍이라는 건 잔인하네요."
밤이 깊어갈수록 보드판 위의 우리 말은 점점 더 멀어졌다. 그녀가 '종착점'에 도착했을 때, 창밖의 비는 그쳤다.
"게임 끝."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모든 추억들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난 듯했다.
"인생은 보드게임이 아니야. 돌아갈 수 있는 곳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버튼도 없지."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보드게임 상자 안에는 한 장의 카드가 남아있었다.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밤새 주사위를 굴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