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썸타기: 주사위가 멈추는 곳에서
사람들은 보드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나는 그에게 진실만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금요일 저녁, 민준의 원룸에 모인 우리 넷은 테이블 위에 펼쳐진 보드게임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주사위를 굴리면 나오는 질문에 답하는 간단한 게임. 그런데 규칙이 하나 있었다. 대답하기 싫은 질문은 술을 마시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
"썸 타본 경험 중에 가장 설레었던 순간은?" 주사위가 멈춘 곳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내 차례였다. 테이블 맞은편에서 유진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나와 유진은 3개월째 불분명한 관계였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세상 사람들이 '썸'이라고 부르는 그 애매한 단계.
내 잔을 들어 올렸다. "패스." 유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실망인지 안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술을 마신 이유는 대답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바로 지금이야"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임은 계속됐다. 주사위가 굴러갈 때마다 우리의 비밀은 하나씩 테이블 위에 드러났다. 첫 키스 경험, 전 연인의 이름, 짝사랑했던 연예인. 모두가 웃고 떠들었지만, 나는 유진의 모든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는 퍼즐 조각 같았다.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가요?" 또 다른 질문이 나왔을 때, 유진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 사람이 게임에서 항상 정직하다는 것." 그녀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갔고,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결국 민준의 원룸에는 나와 유진만 남았다. 보드게임은 정리되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유진이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 한 판만 더 할래?" 그녀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진은 주사위를 굴렸다. 멈춘 주사위가 가리킨 질문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카드를 읽지 않고 자신의 질문을 했다.
"아까 왜 패스했어?"
이번에는 술잔을 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설레는 순간이 될 것 같아서."
유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손에는 여전히 주사위를 쥐고 있었다.
"이제 우리, 보드게임 말고 다른 걸 해볼까?" 유진이 주사위를 테이블 위에 굴렸다. 주사위는 계속 구르다가 마침내 멈췄다.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든, 우리의 썸은 오늘 밤 끝나리라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