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재밌는 함정
"인생은 주사위를 굴리는 순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어."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오래된 목재 서랍장 속에서 찾아낸 낡은 보드게임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상자 안에는 '운명의 경로'라는 이름의 보드게임이 있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 말들, 황변한 종이로 만든 게임판, 그리고 이상하게 무거운 주사위 한 쌍. 규칙서는 단 한 문장뿐이었다. "게임은 당신의 인생을 따라갑니다."
호기심에 친구 민수를 불러 게임을 시작했다. 주사위를 굴리자 묘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민수가 먼저 5를 굴려 다섯 칸을 전진했다. 그의 말이 '예상치 못한 행운' 칸에 멈췄다. 그러자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보낸 문자였다. "내일부터 싱가포르로 발령났다. 너도 함께 가야 해."
우연의 일치라고 웃으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주사위를 굴리자 3이 나왔다. '사랑의 상실' 칸에 내 말이 멈췄다. 그때 집에서 전화가 왔다. 14년간 함께한 우리 집 고양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민수는 장난처럼 다시 주사위를 굴렸다. 6이 나왔고 '새로운 시작' 칸에 도착했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에 친구들이 모르던 여학생의 고백 메시지가 도착했다.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게임을 멈추려 했지만, 규칙서의 뒷면에서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시작한 게임은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
이후 우리는 번갈아가며 주사위를 굴렸다. 매번 게임의 결과가 현실에서 일어났다. 수업 성적,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결정, 우연한 만남까지. 모든 것이 보드게임의 칸에 적힌 대로 펼쳐졌다.
마지막 칸에 도달한 민수는 '운명의 선택' 칸에 멈췄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정말로 싱가포르로 떠났다. 홀로 남은 나는 게임을 완주하지 못한 채 상자에 다시 넣어 서랍장 깊숙이 보관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민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왔다. 그를 처음 만난 순간, 그가 건넨 첫 마디는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그 게임 끝내지 못했지?" 그의 미소에는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오늘 밤, 마지막 주사위를 굴릴 준비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어쩌면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