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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병원

부모님의 병원: 기억의 병동

병원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일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에 드리운 주름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내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가락은 차갑고 딱딱했다. 예전에 내 열을 재던 그 따스한 손이 맞나 싶었다.

"어머니, 오늘은 아버지가 알아보실까요?" 내 목소리가 병원 복도에 울렸다. 어머니는 대답 대신 힘없이 웃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같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301호 앞에 선다.

문을 열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에서 나를 알아본다는 희망의 불빛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오늘도 그저 낯선 방문객을 대하는 공허한 미소뿐이었다.

"아버지, 저예요. 막내." 내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은 그저 예의상의 반응이었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지 3년,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의 눈에 따스함이 돌아왔다. 45년의 결혼 생활, 어머니의 존재는 아직 아버지의 망가진 기억 회로 어딘가에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예쁘네요," 어머니가 미소지었다. "작년에도 이맘때 벚꽃 보러 같이 나갔었잖아요."

아버지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우리... 벤치에 앉아서... 사진 찍었지." 놀라움에 나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30년 전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맞아요, 그때 우리 막내가 세 살이었어요. 기억나요?" 어머니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정말 날 '보는' 눈빛이었다.

"내 새끼..." 아버지의 손이 내게 뻗어왔다. 내 볼을 쓰다듬는 그 손길에서 어린 시절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시던 넓은 손바닥, 어깨 위에 올려주시던 든든한 팔의 무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아버지의 눈빛은 다시 흐려졌고, 우리는 낯선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기억은 사라질지언정, 사랑은 남는다는 것을. 부모님과 나 사이에 흐르는 그 연결고리는 어떤 병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병원을 나서는 길,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벚꽃이 우리 머리 위로 흩날렸다. 어쩌면 기억의 병동에서 가장 아픈 환자는 기억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잠시나마 그 병을 이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