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재밌는 실수
아버지의 서랍 속에서 발견한 그 편지는 내 세상을 뒤집었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방학을 맞아 부모님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던 중, 아버지의 책상에서 간단한 클립을 찾으려다 발견한 낡은 편지 한 장. 황변한 종이에는 떨리는 필체로 '우리의 딸을 잘 부탁합니다'라는 문장이 선명했다.
"혜진아, 점심 먹으러 내려오렴!"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입양아라고? 열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사실이었다. 손이 떨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이건 분명 농담이겠지. 부모님의 재밌는 장난 중 하나겠지.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식탁에 앉아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의 둥근 눈, 어머니의 작은 입술. 내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들이었다. 어쩌면 항상 그랬는데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아빠, 서랍에서 이거 봤어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내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아이고, 그 편지를 찾았구나." 아버지가 편지를 받아들며 말했다. "혜진아, 우리가 설명할게."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오래된 앨범을 가져왔다. 그리고 내게 보여준 것은 내가 태어난 날의 사진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아버지. 두 사람 모두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편지는 네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신생아실 간호사에게 썼던 거야. 그때 우리 옆방에도 '김혜진'이라는 아기가 태어났거든. 두 아기가 바뀌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편지였어."
나는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머리를 스친 생각. "그럼 지금 내가... 진짜 혜진이 맞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그 편지 덕분에 간호사들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으니까. 아빠가 그때 얼마나 신경질적이었는지 몰라. 병원 스태프들이 다 널 '특별 관리 아기'라고 불렀다니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몇 분 전까지 내 정체성을 뒤흔들었던 편지가 이제는 그저 부모님의 재밌는 실수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부모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하고, 과도하게 걱정하고, 그 모든 것이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식탁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우리 세 사람은 그 오래된 편지를 두고 한참을 웃었다. 내 인생의 시작을 증명하는, 부모님의 가장 재밌고도 사랑스러운 증거물을 앞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