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병원: 현실의 틈
어머니가 찍어준 마지막 사진에는 우리 둘이 웃고 있었다. 병원 정원의 벚꽃 아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웃음이 가장 잔인했다.
병원 로비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대기 의자에 앉았다. 공기 중에는 소독약 냄새와 함께 불안이 섞여있었다. 소독약은 병균을 죽이지만, 불안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디지털 안내판에서 번호가 바뀔 때마다 심장이 한 번씩 뛰었다.
"정현우 님,"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다. "204호실로 오세요."
복도는 길었다. 너무 하얗고, 너무 조용했다. 신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찌익' 소리가 났다. 벽에 걸린 사진들이 내 발걸음에 맞춰 지나갔다. 풍경, 꽃, 웃는 아이들. 병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식들.
문을 두드리기 전, 주머니 속 낡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 보았다. 일 년 전 이 병원에서, 어머니와 내가. 벚꽃이 만개했던 4월. "걱정 말아요, 이번 치료가 마지막일 거예요," 의사가 말했었다. 그날 찍은 사진이었다.
204호실 문을 열자, 오래된 카메라가 놓인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박사님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정 선생님. 앉으세요." 박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오늘은 어떤 사진을 가져오셨나요?"
내가 사진을 내밀자, 그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어머니와 함께군요. 언제 찍은 건가요?"
"작년 4월이요. 마지막 치료 날이었습니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요. 그런데 정 선생님, 이 사진 속에는 당신 혼자뿐인데요?"
순간 숨이 멎었다. 사진을 다시 봤다. 벚꽃 아래 서 있는 건 나 혼자였다.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불가능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와 함께 찍었어요. 분명히..."
"정 선생님," 박사는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일 년 동안 치료해온 것이 바로 이겁니다. 당신은 매주 이 병원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찍었다는 다른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하지만 모든 사진에는 당신만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벚꽃이 흩날렸다. 카메라 셔터 소리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세상이 흐릿해졌다. 나는 10년 동안 혼자였던 걸까? 아니면 사진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사진이 진실을 말한다면, 내 기억은 무엇인가?
주머니 속 다른 사진들을 꺼냈다. 모두 혼자였다. 가족 여행, 졸업식, 생일 파티... 웃고 있는 얼굴들 사이에 나만 서 있었다. 사진은 현실을 담는다지만, 때로는 현실의 틈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내 삶이 새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