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회사: 오늘도 퇴근을 위한 전쟁
오늘 아침, 내 책상 위에는 사직서가 놓여 있었다. 내가 쓰지 않은 사직서였다. 누군가 내 이름으로 대신 작성해놓은 것이었다. 날짜만 비워둔 채로.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 모든 직원들의 책상 위에는 같은 사직서가 놓여 있었다. 새로운 분기가 시작되는 오늘, CEO는 전체 메일을 통해 '생존 게임'이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부터 일주일, 회사는 자연 선택의 법칙을 따릅니다. 부서별 최하위 평가자는 자동으로 퇴사 처리됩니다. 책상 위 사직서에 본인이 직접 날짜를 기입하거나, 혹은 동료들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십시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사무실을 채웠다. 누군가는 자판을 세게 내리치며 분노를 표했고, 또 다른 이는 한숨과 함께 천천히 타자를 쳤다. 5년 차 과장 김민수는 서랍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모니터 화면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업무 메일이 쌓여갔다.
"야근 좀 도와줄 수 있어?" 옆자리 동료 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우리 부서의 입사 동기였던 그녀는 최근 어머니의 병간호로 업무 능률이 떨어졌다. 평소라면 주저 없이 도왔을 것이다.
"미안해, 나도 오늘 바빠." 내 입에서 차갑게 나온 거절의 말에 유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졌다. 이것이 내가 5년간 바쳐온 회사의 모습인가. 생존을 위해 동료를 밟아야 하는 곳.
점심시간,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모두가 각자의 생존 전략을 세우느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평소 북적이던 테이블은 한 명씩 띄엄띄엄 앉은 고독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식판에 담긴 찌개가 식어가는 동안,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계속 일했다.
오후 3시, 팀장이 갑자기 회의실로 모두를 불렀다. "이번 주 목표는 신규 고객 50명 유치입니다. 부서 내 최고 실적자는 이번 평가에서 면제권을 받습니다." 팀원들의 눈빛이 예리하게 변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모두가 자리로 돌아갔고,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밤 11시, 사무실에는 여전히 열 명 남짓한 직원들이 남아있었다. 모니터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나는 유진의 자리로 향했다. 그녀는 울먹이며 전화통화 중이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오늘도 못 갈 것 같아요."
내 책상으로 돌아와 사직서를 바라보았다. 펜을 들어 날짜 란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유진의 업무 파일을 내 이메일로 전송했다. 사무실을 나서며 팀장의 자리에 사직서를 올려두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유진이 달려왔다.
"왜 그러는 거야? 네 업무량이 두 배가 될 텐데!" 그녀가 물었다.
나는 미소지었다. "회사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살아남는 거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에는 오랜만에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 진정한 생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