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소개팅병원

소개팅 병원: 마지막 진료

"오늘은 소개팅 병원의 마지막 진료일입니다."

안내 데스크 여성의 말이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진료 차트를 내려다보았다. 세 번의 실패한 소개팅, 두 번의 고스팅, 한 번의 '친구로 지내자' 진단. 내 사랑의 병력은 이제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소개팅 병원은 서울 강남의 한 빌딩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바깥에서 볼 때는 평범한 피부과처럼 보였지만, 내부는 달랐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진료실마다 사랑에 병든 환자들을 맞이했다. 이곳의 원장인 김규현 박사는 '소개팅 알고리즘'으로 유명했고, 그의 성공률은 무려 92%였다.

"박지훈 님, 5번 진료실로 들어가주세요."

진료실 문을 열자 처음 보는 의사가 앉아 있었다.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단정한 흰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의사 배지는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박지훈 씨. 저는 이민주입니다."

그녀는 내 차트를 가볍게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향긋한 샌들우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김 원장님은요?" 나는 긴장하며 물었다.

"오늘부터 병원이 문을 닫게 됐어요. 정부 규제로 인해 더 이상 '소개팅 처방'을 내릴 수 없게 됐거든요."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당황했다. 다른 소개팅 앱들이 모두 실패한 후, 이곳은 내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럼 제 치료는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이민주는 내 차트를 덮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박지훈 씨,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당신의 진단명은 '과도한 기대치'예요. 소개팅에서 찾는 이상형과 실제 만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환자와 상담 중인데도 그녀의 표정은 의사보다는 한 여성으로 보였다.

"사실... 저는 의사가 아니에요."

이민주는 가운 주머니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다. 국내 최대 미팅 앱의 마케팅 디렉터 명함이었다.

"저희가 이 병원을 인수했어요. 김 원장님의 알고리즘을 구매했죠. 그리고..." 그녀가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프로필을 보고 직접 만나보고 싶었어요. 알고리즘이 우리를 98.7% 매칭했거든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당신 회사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인가요? 가짜 병원으로 환자를 유인해서 데이트 신청을?"

"아니요, 병원은 진짜예요. 다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요." 그녀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마케팅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결정이었어요."

의사와 환자, 소개자와 소개받는 사람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진료실 밖에서 병원 폐업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진료 기록을 어떻게 남길까요, 박지훈 씨?" 그녀가 묻자 나는 창밖으로 번화한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처방전 대신 커피 한 잔은 어떨까요?"

때로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병원 문을 나서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