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썸타기애니

썸타기 애니: 12프레임의 떨림

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12프레임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했다. 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의 눈을 피하며 스마트폰을 꾹 쥐었다. 화면 속에선 미완성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정지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김태희 씨 맞으세요?"

결국 그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부드러웠다. 고개를 들어보니 파란색 후드티에 노트북 가방을 멘 그는 예상대로 동아리 후배였다. 애니메이션 동아리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인데,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들었다.

"네, 맞아요. 민준이죠?"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난 서둘러 작업 중이던 애니메이션을 닫았지만, 그의 눈은 이미 화면을 훑고 지나간 뒤였다.

"선배 작업하시는 거 봤어요. 주인공 눈동자에 반사되는 빛 표현이 정말 섬세하던데..."

그의 말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지난 5년간 애니메이터로 일하며 수백 개의 장면을 그렸지만, 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칭찬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종점까지 애니메이션 기법과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 속에서 나는 그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SNS를 팔로우했고, 좋아요와 댓글로 소통했다. 직접적인 만남은 없었지만, 그의 일상 속 스케치와 내 애니메이션 작업 과정이 교차하며 우리만의 프레임이 쌓여갔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썸'인지, 단순한 동료애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전시회 같이 가실래요? 일본 전통 애니메이션 특별전이라고 하네요."

심장이 프레임 수를 놓친 것처럼 불규칙하게 뛰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답장을 쓰려는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회사에서 긴급 수정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다음 날 아침까지 24프레임의 장면을 완성해야 했다.

결국 난 그의 초대를 거절했고, 우리의 대화는 점점 뜸해졌다. 애니메이션처럼 매끄럽게 이어져야 할 관계가 어색한 스톱모션처럼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두 달 후, 내가 작업한 단편 애니메이션이 지역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상영회 후 질문을 받는 시간, 관객석 뒤쪽에서 익숙한 파란색 후드티가 보였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물었다.

"주인공이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표정이 변하는 순간, 왜 12프레임만 사용하셨나요? 보통 24프레임이 표준인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 더 진실되니까요. 실제 사람들의 감정은 매끄럽게 흐르지 않잖아요."

행사가 끝나고 로비에서 마주쳤을 때, 우리는 마치 중단된 애니메이션이 다시 재생되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어쩌면 우리의 썸타기는 24프레임의 완벽함이 아닌, 12프레임의 어색함 속에서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