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기 오컬트: 보이지 않는 관계의 비밀
그녀가 나를 본 순간, 사무실의 형광등이 세 번 깜빡였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우연'이 앞으로 열두 번 더 반복될 줄은 몰랐다.
정유리 과장은 신입사원인 내게 유독 친절했다. 커피를 타주거나,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치거나, 점심시간에 "혼자 드세요?" 하며 내 책상을 찾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동료들은 "썸 타는 거 아니냐"며 놀렸고,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문제는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사무실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프린터가 저절로 작동하거나, 에어컨이 갑자기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거나, 가끔은 누군가 내 이름을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알아요? 우리 회사 들어온 지 정확히 13개월 됐네요."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그날 저녁, 처음으로 단둘이 술을 마셨다. 취기가 오르자 그녀는 내 손을 잡았고, 그 순간 테이블 위의 촛불이 갑자기 치솟아 올랐다.
"놀라지 마세요. 내가 조금... 특별해서요."
유리 과장은 자신이 '감지자'라고 했다. 전생에 인연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녀의 오랜 인연이라고 했다. "우리가 썸 타는 게 아니라, 당신 영혼이 내게 반응하는 거예요."
미친 소리처럼 들렸지만, 그녀의 손을 잡자 갑자기 머릿속에 낯선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바닷가 마을, 빨간 등대,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는 나. 그 기억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이 생의 내 것은 아니었다.
"썸이란 건요, 사실 우리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이에요. 그걸 오컬트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녀는 미소지었다. "당신은 이제 느끼죠? 우리가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는 걸."
그날 밤,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 백미러를 통해 잠시 뒤를 돌아봤을 때, 순간 내 눈동자가 새까맣게 변한 것을 보았다. 놀라 다시 보니 평범한 내 눈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켜자, 배경화면이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손으로 설정한 적 없는 기호들.
다음 날, 유리 과장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팀장은 그녀가 갑자기 사직서를 냈다고 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쪽지에는 단 한 줄. "13번째 썸이 끝났습니다. 다음 생에서 더 나은 '우리'가 되길."
오늘도 새 입사자가 왔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사무실의 형광등이 세 번 깜빡였다. 우연일까? 아니면 다시 시작된 것일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커피를 건넸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검게 물들었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