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썸타기, 차가운 요리
그의 칼질은 내 시선보다 빨랐다. 손목을 감싸 돌아가는 팔뚝의 근육이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동안, 숨소리조차 죽이고 지켜보는 나는 이미 요리가 아닌 요리사에게 중독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와서 한번 맛봐볼래요?"
민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스팀이 올라오는 냄비 위로 몸을 기울이자 그의 체온이 내 등을 데웠다. 요리 수업을 시작한 지 일곱 번째 수업이었지만, 우리 사이의 온도는 매번 소스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소금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소금을 집으려다 손가락이 부딪혔다. 우연이었을까, 의도였을까. 그의 눈동자에는 장난기 어린 불빛이 깜빡였다.
"요리는 정확함이 생명인데, 솔직히 당신 눈에는 지금 정확한 게 하나도 없어 보여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선생님의 눈에도 요리만 보이진 않잖아요?"
그는 대답 대신 조리대 위에 놓인 와인을 두 잔 따랐다. 붉은 액체가 유리잔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우리 관계와 닮아 있었다. 맑은 듯 혼탁한, 단순한 듯 복잡한.
"이렇게 썸만 타다가는 음식이 다 식어버릴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썸이요?" 그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묻더니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았다. "요리는 타이밍이 중요해요. 너무 오래 끓이면 맛이 변하고, 너무 일찍 불을 끄면 완성되지 않죠."
그의 손가락이 내 손목의 맥박을 느끼는 동안, 주방의 온도는 오븐보다 뜨거워졌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배우는 거였죠?" 내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불 앞에서 기다림의 미학이요."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음식보다 서로의 눈빛을 더 많이 맛보았다. 칼로 재료를 써는 대신 말로 서로의 마음을 해부했다. 요리는 식었지만, 우리 사이의 공기는 점점 데워졌다.
다음 수업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도착했다. 주방에는 민준 대신 낯선 여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새로운 강사를 맡게 된 서연이라고 합니다. 민준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하지 않으시게 됐어요."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를 열었을 때, 그제서야 민준이 마지막 수업에서 내 가방에 몰래 넣어둔 종이가 생각났다. 조심스럽게 접힌 종이를 펼치자 낯선 요리 레시피가 나왔다. 재료 목록 맨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메모가 적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재료는 두 사람입니다. 썸타기는 이제 그만, 진짜 요리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 주소로 오세요."
나는 웃으며 코트를 다시 집어들었다. 때로는 완벽한 요리를 위해 뜨겁게 달궈진 팬에서 과감히 뛰어들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