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타기의 초콜렛 법칙
밸런타인데이 아침, 책상 위에 놓인 초콜릿 한 상자가 내 세계의 중심축을 뒤틀어 놓았다. 누가 놓고 갔는지 이름도 없었고, 단지 작은 쪽지 하나만 붙어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다크 초콜릿. 3년 전 우연히 들었던 말, 기억하니?"
3년 전의 기억이라니. 누구지? 사무실에서 나는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그중 내가 호감을 느끼는 지현과 미묘한 썸을 타고 있었지만, 그녀가 내 취향을 기억할 만큼 우리 사이가 깊었던가? 아니면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는 성준일까? 아니면... 매일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마케팅팀의 그 여자?
"오, 초콜릿이네." 지현이 내 책상 앞에 서서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누구 선물?" 그냥 아는 척하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이것이 바로 '썸'이라는 관계의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고통이었다.
초콜릿은 하루종일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살짝 멈칫하는 시선들. 업무 미팅에서 성준의 눈이 내 쪽으로 미묘하게 흘러왔다가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사무실 전체가 마치 비밀을 아는 듯했고, 나만 모르는 것 같았다.
퇴근 시간, 용기를 내어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내부에는 12개의 다크 초콜릿이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 개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11개뿐이었다. 그제서야 쪽지의 뒷면에 작게 쓰인 글씨가 보였다.
"하나는 내가 먹었어. 맛있더라. 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고 싶었는데, 3년 동안 용기가 나지 않았어. 오늘도 역시... 하지만 초콜릿이 말해주겠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케팅팀의 그녀. 항상 같은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서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이상을 나누지 못했던. 3년 전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내가 무심코 다크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혹시 다른 사람이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지만,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쓴맛이 혀끝에 퍼지다가 이내 달콤함으로 변해갔다.
엘리베이터 앞,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도 똑같은 초콜릿 상자가 들려 있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을 때, 썸이라는 모호한 관계가 끝나고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말보다 초콜릿 한 조각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