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썸타기: 창가 자리의 비밀
창가 자리에서 그녀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처음 본 건 입사 세 번째 날이었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17층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는 그 고요한 표정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우리는 같은 부서도, 같은 프로젝트 팀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회사의 두 사람일 뿐. 하지만 매일 아침 8시 30분, 텅 빈 사무실에 있는 그녀와 나, 그리고 두 잔의 커피만 있었다. 그녀는 항상 창가에, 나는 항상 복도 쪽 자리에.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모르는 척, 그렇게 아침의 의식이 시작되었다.
"오늘 머그잔 색이 달라졌네요."
말을 건 건 내가 아닌 그녀였다. 17일 만의 첫 대화. 창백한 11월의 아침, 사무실 난방이 미처 들어오지 않은 공간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샀어요. 어제..." 내 목소리가 떨렸다. "커피 맛이 더 좋아진 것 같아서요."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의 자리에는 내 것과 같은 머그잔이 놓여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색상뿐. 빨간색 내 것과 달리, 그녀의 것은 파란색이었다.
썸이라는 건 이런 것이리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스러운 아침 의식. 출근 시간을 조금씩 당기게 만드는 기대감.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 회의실에서 멀리 떨어져 앉아있어도 서로의 존재만으로 공간이 달라지는 느낌.
사내 메신저에서 '안녕하세요'로 시작한 대화는 점심 시간으로, 퇴근 후 커피 한 잔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즐겨 듣는 음악, 그녀의 꿈,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까지.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의 룰은 엄격했다. 사내연애는 금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우리는 조심했다. 공식적으로는 그저 동료였다.
"자리를 바꿔볼까요? 당신이 매일 보는 풍경이 궁금해요."
삼 개월 째 되던 날 아침, 그녀의 제안에 자리를 바꿨다. 처음으로 창가에 앉았을 때, 나는 그녀가 매일 보던 풍경을 발견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 뒤로 복도 쪽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동안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인사팀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사내 규정 위반에 관한 경고'. 누군가 우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창가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내 책상 위에는 그녀의 파란 머그잔만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쪽지 한 장. "회사 밖에서 진짜 우리가 됩시다."
지금도 회사 창밖을 바라보면, 그날의 내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생각난다. 커피가 식기 전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