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GG

아내화장품

아내의 화장품: 숨겨진 비밀

아내의 화장대 서랍을 열었을 때, 나는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의 얼굴을 발견했다. 화장품들 사이에 끼워진 낯선 여자의 사진 한 장. 십 년의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다. 화장대에서 풍겨오는 라벤더 향이 갑자기 역겨워졌다.

죽은 장모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친척들과 함께 고향에 남아있었고, 나는 서울로 먼저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화장대 서랍에 중요한 서류가 있을 거야. 찾아줄래?" 전화로 아내가 부탁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사진 속 여자는 미소 짓고 있었다. 뒷면에는 희미한 펜 자국으로 '나의 다른 절반, 영원히'라고 적혀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옆에는 내가 본 적 없는 고급 화장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내가 쓰는 것보다 훨씬 비싼 브랜드였다. 아내는 항상 "화장품에 돈 쓰는 건 낭비"라며 저렴한 제품만 사용했었다.

서랍 깊숙이 파우치 하나가 더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전혀 보지 못했던 진한 레드 립스틱과 스모키 아이섀도가 들어있었다. 아내는 항상 누드톤 메이크업만 했었다. 파우치 안쪽에는 작은 쪽지가 있었다. '오늘 밤 9시, 평소 장소.'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거실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었다. 갑자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목소리였다.

"여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어. 엄마 유품은 정리됐어?"

허둥지둥 서랍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아내는 평소보다 창백했다. 검은 상복 대신 단정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유품은... 거의 다 정리했어. 근데 갑자기 일찍 온 거야?"

아내가 망설이듯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남긴 중요한 물건이 있어서..."

아내는 주저없이 화장대로 향했다. 문득 그녀의 걸음걸이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더 조심스럽고, 더 계산된 듯한 움직임이었다. 화장대 앞에 선 아내의 손이 서랍 손잡이를 붙잡았다.

"찾았어?" 아내가 물었다.

"무슨 서류를 말하는 거야?"

아내는 서랍을 열고 사진과 화장품을 꺼냈다. 그리고 몇 초간 침묵 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엄마의 것이야. 그리고 이 사진 속 여자는... 엄마의 쌍둥이 자매야. 내 이모지."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엄마는 평생 이중생활을 했어. 가족에겐 검소한 주부였지만, 매주 한 번은 화려한 화장을 하고 이모와 만났어. 그들은...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어. 가족들은 아무도 몰랐지. 나도 엄마 임종 전날에야 알게 됐어."

아내의 손에서 레드 립스틱이 빛났다. "오늘이 엄마와 이모의 기념일이야. 엄마 대신 이모를 만나러 가야 해. 마지막 작별인사를."

아내가 화장대 앞에 앉아 천천히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십 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내가 알았던 아내는 단지 그녀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화장품 서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