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MBTI: 당신이 모르는 사람
아내의 서랍을 열었을 때, 문제가 시작됐다. 내게 꼭 필요했던 영수증을 찾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영수증이 아닌, 작은 노트였다. 표지에는 그녀의 필체로 'ENFP에서 INTJ로'라고 적혀 있었다.
"여보, 이거 뭐야?"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아내를 향해 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창백해진 얼굴을 비추었다.
"그냥... 개인적인 메모야."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15년 결혼 생활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노트를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역할 연기 계획'이라는 제목 아래 꼼꼼한 기록들이 있었다. 'ENFP 특성: 열정적, 사교적, 즉흥적, 감정 표현 풍부'와 같은 메모와 함께 '결혼 초기 5년: ENFP 성향 유지'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뒤로 넘기자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나왔다. '진짜 나의 INTJ 성향: 전략적, 독립적, 분석적, 감정 표현 절제'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점진적 전환 계획: 7년차부터 INTJ 특성 조금씩 드러내기'.
"이게 무슨 뜻이야?" 내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 15년 동안 네가 연기를 했다는 거야?"
아내는 천천히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늘 보던 따뜻함 대신 날카로운 분석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신이 나를 좋아했던 건 내가 ENFP였기 때문이야. 첫 데이트에서 당신이 말했잖아, '너같이 활발한 여자가 좋다'고."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아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원하는 사람이 됐어. 하지만 그건 진짜 나가 아니었어."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창밖에서는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15년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 지금의 당신은 누구야?"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내—혹은 내가 아내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따뜻하지도, 밝지도 않았다. 그저 계산된 듯한 미소였다.
"이제 당신은 진짜 나를 만날 시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질문은 단 하나예요. 당신은 당신이 15년간 사랑했다고 생각한 ENFP가 필요한가요, 아니면 당신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진짜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노트를 내려놓으며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다시 쓰여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 옆에 있는 이 낯선 사람과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