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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남사친

애니메이션 세계의 남사친: 2D와 3D 사이

유리는 밤마다 꿈에서 그를 만났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선이 만들어낸 환상, 픽셀로 구성된 꿈이었으니까.

"또 왔네." 하준이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항상 동일했다. 애니메이션 속 더빙 배우의 목소리처럼 완벽하게 일정했다. 유리는 그런 하준이 좋았다. 8년간 함께 자란 남사친이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별빛 너머'의 주인공과 똑같이 생긴 하준. 현실의 하준은 오늘도 그녀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며 웃었지만, 꿈속의 하준은 달랐다.

유리의 방은 애니메이션 포스터로 가득했다. 벽지처럼 붙어있는 포스터 속 캐릭터는 하나같이 하준을 닮아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유리가 좋아하는 모든 애니메이션 주인공은 하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넌 왜 항상 애니메이션만 보는 거야?" 오늘도 하준은 유리의 방에 놀러 와 물었다. 현실의 하준은 그저 친구일 뿐이었다. 유리가 사랑하는 건 2D 속 완벽한 주인공들이었다. 현실의 하준은 너무 가까워서, 너무 친구여서 사랑할 수 없었다.

"현실은 지저분해." 유리가 대답했다. "애니메이션은 완벽하잖아. 선으로 그린 세상은 항상 아름답고, 주인공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

하준은 그녀의 책상 위 애니메이션 피규어들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이 주인공들, 다 나랑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

유리의 심장이 멈칫했다. 그것은 꿈속에서만 인정하던 비밀이었다. 햇살처럼 투명한 하준의 웃음이 그녀의 방을 가득 채웠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웃음이었다.

"바보야." 하준이 말했다. "내가 너한테 고백한 지 몇 년째인데, 넌 여전히 2D 남자들한테 빠져 있어."

유리는 혼란스러웠다. 고백? 하준이? 언제? 그때 하준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유리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배경화면은 유리였다. 그리고 알림 폴더에는 '유리에게 고백한 날'이라고 적힌 기념일이 있었다. 1년 전 오늘이었다.

"넌 그날 내 고백을 듣고 '우리 그냥 친구로 남자'고 했어. 그리고 더 애니메이션에 빠져들었지. 내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

유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기억났다. 하준의 고백, 그리고 자신이 거절한 이유. 현실의 사랑은 언젠가 끝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속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하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체온은 생생했다. 2D가 아닌 3D의 온기였다. "애니메이션은 멈춰있는 완벽함이야. 하지만 현실은 불완전해도 계속 움직여. 우리도 마찬가지야."

유리는 벽에 붙은 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하준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진짜 하준의 온기는 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완벽한 2D 세계에 도피하고 있었다. 현실의 불확실함이 두려워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유리는 결심했다. 오늘, 그녀는 현실의 하준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어쩌면 현실의 사랑은 애니메이션처럼 선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직접 색칠할 수 있는 사랑이었다. 그녀의 핸드폰 배경화면 속 애니메이션 주인공은 마치 하준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