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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부모님

여름의 그림자, 부모님의 빛

에어컨이 고장 난 날, 땀방울이 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릴 때, 나는 부모님의 부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우리 집 거실은 오후의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 오븐처럼 달궈져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여름, 부모님이 선풍기 바람을 내게 전부 돌려주시던 그 공기의 온도를 기억하라는 듯이.

책장 맨 윗칸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낡은 사진첩을 꺼냈다. 손가락으로 먼지를 털어내자 햇빛에 반짝이는 먼지 입자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 그곳에는 내 일곱 번째 생일, 바닷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었다.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감각이 되살아났다.

"아들아, 바다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단다. 우리가 보지 않아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말씀으로 들렸지만, 이제야 그 의미가 가슴을 찌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이지 않아도, 만질 수 없어도,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창문 너머로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여름의 전령사들. 어머니는 매미 소리가 들리면 항상 "저 소리가 들리는 한 여름은 영원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여름을 좋아하셨다. 복숭아 향이 가득한 부엌,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소리, 저녁이면 돗자리를 펴고 별을 세던 시간들.

사진첩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날 찍은 사진이 있었다. 부모님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때 그 표정의 의미를 몰랐다. 그들이 나를 보내는 심정을, 자식을 위해 기꺼이 그림자가 되어주는 부모의 마음을.

창밖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방 안에 스며들어 모든 것을 따스한 색으로 물들였다. 마치 부모님의 사랑이 만든 그림자처럼. 문득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오랜만에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더운 여름날,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났으며,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림자를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창문을 열자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부모님의 손길처럼 시원하고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