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회사: 에어컨과 비밀
출근길 아스팔트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날이었다.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씨가 있다면, 이 여름은 분명 그 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내 땀에 젖은 얼굴을 때렸다. 이 순간만큼은 이 대형 유리 건물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부장님'.
"김 대리, 오늘 보고서 준비됐지?"
준비가 됐다고? 도대체 어떤 보고서? 나는 아무것도 지시받은 적이 없었다. 혹시 메일을 놓친 건가? 공포가 내 등을 타고 올라왔다. 이 여름 더위보다 더 끔찍한 건 부장님의 노여움이었다.
"네... 거의 다 됐습니다."
거짓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몰랐다고 하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악몽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보고서를 찾아 회사 서버를 뒤지고, 동료들에게 조심스레 물어보고, 이전 메일들을 검색했다.
점심시간, 모두가 식당으로 향할 때 나는 자리에 남았다. 윤 과장이 내 책상 앞에 멈춰 섰다.
"아직도 그거 찾고 있어? 그냥 부장님께 솔직하게 말해."
"어떻게? 그럼 내 평가는 끝장이야."
윤 과장은 한숨을 쉬더니 내 모니터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절대 생각지 못한 폴더를 열었다. '기밀 프로젝트 X'.
"이거... 어떻게 알았어?"
"오늘 아침에 부장님이 잘못 보내신 거야. 원래 내가 준비하는 건데."
윤 과장의 눈에서 불안함이 읽혔다.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이 보고서는 평범한 분기 보고서가 아니었다. 회사가 몰래 준비하고 있는 구조조정 계획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도, 윤 과장의 이름도 거기에 있었다.
사무실은 에어컨 바람이 가득했지만, 나는 등줄기에 흐르는 뜨거운 땀을 느꼈다. 이 여름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회사에서의 마지막 계절이 될 것이다.
윤 과장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밖으로는 도시의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이 차가운 사무실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자리에 앉아 있는지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번 여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꼭 우리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점심 먹으러 갈래? 얘기할 게 있어."
나는 윤 과장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밖은 찌는 듯한 더위였지만, 우리의 계획은 이미 서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