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의 드라마: 현실과 픽션 사이
처음 그녀의 눈물을 봤을 때, 나는 그것이 진짜인지 연기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은경이 다섯 번째로 보고 있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죽어가는 장면에서였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촉촉하게 볼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보며, 나는 문득 그녀가 내 여친이 된 이후로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 진짜 억울하게 죽었어... 너무 슬퍼." 은경이 흐느끼며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이미 다음 에피소드를 클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섯 시간째 계속되는 드라마 마라톤에 나는 이미 지쳐있었지만, 은경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우리 집 소파에는 은경이 가져온 두 개의 머그컵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삼각관계에 빠진 재벌 3세'가 그려진 것, 다른 하나는 '비극적 운명의 여주인공'이 그려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은경의 삶이 드라마에 잠식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도 저런 로맨틱한 데이트 한 번 해볼까?" 어느 날 은경이 드라마 한 장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화면 속 남자는 여자를 위해 한강변에 초를 수백 개 켜놓고 프러포즈하고 있었다. 현실성 제로인 장면이었다. "소방법 위반이야," 내가 웃으며 말했을 때, 은경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다음 날, 은경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머리를 염색했다. 그 다음 주에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사용한다는 화장품을 모두 사들였다. 그녀의 말투와 행동이 점점 드라마 속 캐릭터를 닮아갔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너 요즘 나한테 관심 없어." 은경이 어느 날 불쑥 말했다. 그 말투와 표정은 분명 그녀가 보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치 대본을 읽는 것처럼.
"은경아, 우리 관계가 드라마는 아니잖아." 내 말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진짜인지, 아니면 드라마에서 배운 연기인지 다시 한번 구분할 수 없었다.
헤어진 후 석 달이 지났다. 오늘 우연히 길에서 은경을 마주쳤다.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 심플한 차림, 그리고 전혀 다른 분위기. "요즘은 드라마 안 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현실이 더 재밌더라고."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켰을 때, 우연히 한 드라마가 눈에 들어왔다.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의 짧은 머리와 심플한 옷차림이 오늘 본 은경과 너무나 흡사했다. 화면을 끄며 쓴웃음이 났다. 결국 은경은 또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녀의 드라마 속 엑스트라였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