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과의 이별: 그림자가 말하는 것
그녀의 그림자가 나보다 먼저 떠났다. 창가에 앉아있던 여자친구의 실루엣이 저녁 햇살에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림자가 스르륵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내 눈이 잘못 본 줄 알았다.
"너 뭐 하나 물어볼게 있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커피잔을 돌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평소보다 더 섬세하게 움직였다. 창밖으로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보였고, 카페 안에는 시나몬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과 똑같은 장소, 똑같은 계절이었다.
"만약에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넌 어떨 것 같아?"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떨림이 없었다. 마치 오래 생각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무슨 소리야. 네가 어디로 가겠다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내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이상하게도 이 대화를 전에도 나눈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다시 보았다. 그녀의 그림자가 벽에서 떨어져 독립된 존재처럼 움직이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살금살금 출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너, 요즘 많이 지쳐 보여." 내가 말했다. "우리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건 어때?"
그녀의 눈에 순간 놀라움이 스쳤다. "무슨 말이야?"
"내 말은... 우리 관계, 잠시 쉬어가자는 거야."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그림자가 먼저 떠나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말하는 게 덜 아플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커피잔을 돌리는 손가락만이 멈추지 않았다. 내 심장은 차갑게 식어가는 커피처럼 천천히 식어갔다.
"알았어."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그럼... 잘 있어."
그녀가 일어났을 때, 이상하게도 그림자는 그대로였다. 그녀만 카페를 나갔고, 그림자는 내 옆에 남았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내 그림자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 어쩌면 내 그림자는 이미 오래전에 그녀에게로 갔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발견한 것은 불이 꺼진 창문과 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뿐이었다. 상자 안에는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과 내가 선물했던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맨 위에는 쪽지 한 장. "네가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내 그림자가 떠나는 걸 본 건 아니지?"
오늘도 나는 그 카페에 앉아 창가를 바라본다.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앉아있다. 하나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