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끝과 남사친의 시작
기내식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순간, 나는 이 여행이 큰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도쿄행 비행기 안, 나의 왼쪽에는 7년 지기 남사친 민준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3개월 전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앉아 있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 괜찮아?" 민준이 내 귀에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 7년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떨림이 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오른쪽에서는 전 남자친구의 새 여자친구를 향한 달콤한 속삭임이 들려왔고, 왼쪽에서는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오랜 친구의 체온이 전해졌다.
이 여행은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취업 실패, 연애 실패, 그리고 서른이라는 나이. 민준은 내가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일본 출장에 동행하자고 제안했다. "넌 항상 일본에 가고 싶어했잖아. 내가 일할 때 너는 구경하면 돼. 숙소도 내가 예약할게." 그의 말에 별 생각 없이 동의했던 나였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우리는 도쿄의 한 작은 호텔로 향했다. 민준이 예약했다던 호텔 방은 더블 베드 하나뿐인 좁은 공간이었다. "방이 하나밖에 없었어. 성수기라서." 그의 설명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7년 동안 우리는 항상 서로를 '그냥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걸까?
도쿄의 밤은 생각보다 춥고 외로웠다. 민준은 회의가 있다며 나갔고, 나는 혼자 좁은 방에 남겨졌다. 그의 짐을 정리하던 중, 그의 여권 속에서 작은 메모를 발견했다. "이번엔 꼭 고백하자. 7년은 너무 길었어." 그 순간, 내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내 핸드폰이 울렸다. 민준이었다. "저기... 회의가 취소됐어. 같이 저녁 먹을래? 네가 항상 가고 싶어했던 그 라멘집 예약했어."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메모를 다시 여권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래, 나갈게."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민준을 보았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셔츠를 갖춰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넘겼다. 7년 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보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준비됐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 여행이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남사친'과 '여사친'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