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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소개팅

여행 소개팅: 행선지 없는 마주침

소개팅 상대가 20분이나 늦었을 때, 나는 이미 세 번째 아메리카노를 반쯤 비우고 있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도 실패로군.' 그때 문이 열리고 비에 흠뻑 젖은 한 여자가 들어왔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발견했다.

"정말 죄송해요. 제 핸드폰이 고장 났고, 이 동네가 처음이라 길을 잃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나는 이런 변명에 짜증을 냈겠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와 난처한 상황이 묘하게 내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소개팅 장소를 벗어나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던 우리는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백팩 하나로 동남아시아를 6개월간 여행했고, 나는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보기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뎠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우리는 서로가 가봤던 도시들의 냄새와 색깔, 맛과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녀가 말했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의 소개팅도 어쩌면 두 낯선 여행자의 우연한 만남 같았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누군가의 소개로 이 카페라는 교차점에서 마주친 것뿐.

다음 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주말, 내가 알려주고 싶은 곳이 있어." 그녀의 답장은 빨랐다. "어디든 좋아요. 근데 미리 말하자면 저 길치예요." 나는 웃으며 답장을 썼다. "괜찮아.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니까."

세 달 후, 우리는 정말로 여행을 떠났다.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첫 만남처럼, 또 길을 잃었네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니, 우리는 길을 찾은 거야."

가끔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함께하는 길 잃음에서 시작된다. 소개팅이라는 작은 역에서 만나 우리는 아직도 함께 여행 중이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서로의 지도를 함께 그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