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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재밌는

여행의 재밌는 역설

그녀가 남긴 것은 유서가 아니라 여행 계획서였다.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인 노트에는 '나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 각 도시마다 머물 숙소와 방문할 장소들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창가에 기대 섰던 나는 한동안 그 계획서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재밌는 건, 내가 이제 그녀의 여행을 대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았다. "여행은 부질없는 짓"이라며, 늘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이 계획서에는 열정이 넘쳤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교토의 대나무 숲... 그녀가 꿈꿨던 세계는 노트 속에서만 존재했다.

첫 목적지는 베니스였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를 걸으며, 나는 어머니가 그토록 동경했던 곤돌라에 올랐다. 곤돌리에가 이탈리아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이 재밌는 상황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어머니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다니.

두 번째 도시 파리에서는 에펠탑 앞에서 그녀가 원했던 대로 샴페인을 마셨다. 세 번째 도시 이스탄불에서는 그랜드 바자르에서 그녀가 지정해준 터키식 램프를 샀다. 매 순간마다 나는 웃었다가 울었다가를 반복했다. 어머니의 계획은 언제나 재밌고 엉뚱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함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뜻밖에도 우리 동네 뒷산이었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집"이라고 그녀는 적어두었다. 그리고 특정한 벤치에서 일출을 보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 벤치에 도착했을 때,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우리 마을의 전경은 그녀가 평생 보아왔던 풍경이었고,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였을지도 모른다.

벤치 아래에는 작은 금속 상자가 묻혀 있었다. 안에는 나를 위한 마지막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진짜 여행은 낯선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가지는 것이란다. 재밌지 않니? 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길." 그날 아침, 나는 평생 보아왔던 일출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여행은 사실 나의 첫 여행이었던 것이다.